(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독재자"
나이브 부켈레(40)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트위터 자기소개다. "엘살바도르의 독재자"로 썼다가 한 발 더 갔다.
부켈레 대통령은 2019년 당선과 취임 때부터 꽤 주목을 받은 정상이었다.
그는 중도우파 성향 제3당의 후보로 출마해 30년간 이어진 양당 체제를 깨고 당선됐다. 취임 당시 37세로, 엘살바도르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중남미에서 가장 젊은 현직 정상이다.
청바지와 야구 모자 등 자유로운 옷차림을 즐겼고, 소셜미디어로 활발히 소통했다. 첫해 유엔총회에 참석해선 연단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를 찍기도 했다.
독재자와 민주 지도자를 딱 나누는 기준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었다.
기존 양당이 장악한 국회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그는 지난해 2월 무장 군경을 대동하고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압박했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며 국회를 장악한 이후엔 더 거침없었다.
국회를 통해 곧바로 대법관들을 파면하고 여권 성향의 판사들을 새로 임명했다. 입법부와 사법부를 모두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엘살바도르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있지만, 새로 구성된 대법원은 최근 대통령 연임이 가능하다고 판결해 2024년 대선에서 부켈레가 재선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대통령 임기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도 추진 중이다.
그때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 등은 부켈레의 권위주의적인 행보에 우려를 표시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부켈레 대통령의 '뒷배'는 국민의 지지다. 임기 2년을 넘긴 그의 지지율은 여전히 80% 안팎이다.
부패한 기성 정치권, 만연한 범죄에 지쳤던 국민은 젊은 지도자에 열광했다. 악명높은 갱단 조직원들을 속옷만 입힌 채 교도소 강당 안에 채워놨을 때, 인권단체들은 비판했지만 국민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남은 임기 큰 변화가 없다면 그는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해 재선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허약한 일부 중남미 국가들에서 독재자가 출현하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도자가 헌법을 고쳐 장기집권의 길을 트고, 언론을 통제하고, 이런저런 장치를 마련해 유리한 선거를 치른다.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제재쯤은 간단히 무시하고 반정부 시위에 철퇴를 가하면 반대 목소리도 잦아든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일상이 된 나라 중 하나가 엘살바도르에서 멀지 않은 니카라과다.
장기집권 중인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정적들을 줄줄이 체포한 후 통산 5선에 도전한다. 오랜 탄압에 비판 언론은 빈사 상태고 야권 인사들은 감옥에 있거나 나라를 떠났다.
2018년 반정부 시위에서 강경 진압으로 300여 명이 숨진 이후론 이렇다 할 큰 시위도 없다.
1981년생 부켈레는 1945년생 오르테가와 다를까?
오르테가도 초반 임기 때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가 연임과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쳐 장기 집권 의사를 분명히 했을 때도 국민은 빈곤 개선에 힘쓰는 오르테가를 지지했다.
지난달 엘살바도르에서 1만5천 명가량의 시위대가 "독재 타도"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벌였을 때 부켈레 대통령은 정부가 최루탄 등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국민과 대통령의 다소 긴 밀월이 끝나고 거리의 시위대가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면 그땐 어떻게 될까.
독재자가 작정하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들면 피를 묻히는 건 불가피하다. 장기 집권이 쿠데타로 이어지고 결국 민주주의가 수십 년씩 후퇴하는 것도 낯선 시나리오가 아니다.
세상에 쿨한 독재자는 없다. 권력을 향한 지나친 욕망은 결코 쿨하지 않다. 제아무리 인기 있는 밀레니얼 지도자가 당당하게 "나는 독재자"라고 외쳤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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