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703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아직 연말까지 2개월이 남았는데도 작년 12월 말(670조1천539억 원)과 비교하면 5%가량 늘어난 수치로, 연초 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5∼6%)의 목까지 차오른 상태다. 특히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대출 포함)은 5.09%(473조7천849억→497조8천958억 원)나 불어났고, 전세자금 대출은 무려 9개월여 만에 105조2천127억 원에서 121조7천112억 원으로 15.68%가 뛴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불어난 가계대출(33조2천877억 원) 가운데 약 절반이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얘기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은행들은 전세자금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 전세자금 대출을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는 등 주택담보대출, 집단대출의 한도를 크게 줄인 데 이어 증가율이 5%를 넘어서자 이달부터 아예 영업점별로 대출 한도를 정해놓고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매한가지다. 그렇게 해서도 대출 총량 관리가 어려울 경우 은행들은 연말께 아예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시중은행 가운데 신한은행만 증가율이 3.16%로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다른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 '풍선효과'로 인해 곧 같은 처지에 놓일 게 불 보듯 뻔하다. 지난 5일 출범한 토스뱅크의 경우 벌써 가계대출 잔액이 당국이 제시한 올해 최대한도(5천억 원)의 절반에 이르러 조만간 대출을 중단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이달 중순께 발표할 가계부채 보완대책에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불안이 증폭하고 있다. 집값, 전셋값 상승으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 대출 수요는 기본적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은행들이 대출을 강하게 조이거나 중단하면 실수요자들은 저축은행이나, 카드회사, 대부업체, 불법 사금융 시장 순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대출난민'이 현실화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포털 부동산 관련 카페에는 "전세대출 규제를 재고할 달라"는 읍소 글들이 대거 올라오고 있다.
천문학적 가계부채는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신흥국 금융 불안, 국내 기준금리 인상까지 겹쳐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보완대책에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하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집값ㆍ전셋값 폭등으로 피해를 본 서민과 실수요자들이 규제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것 또한 너무도 자명하다. 만성적인 전세 물량 부족에 가을 이사철 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세난은 더욱 악화하고 있는데 대출까지 안 된다면 당장 집을 마련하거나 옮겨야 하는 이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집값 폭등 탓에 벼락거지가 됐는데 전세대출까지 막혀 월세로 나앉게 생겼다"는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과잉대출에 대한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수요자들이 날벼락을 맞고 대출난민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교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성실하게 한푼 두푼 모아 전세 들어가고, 주택 구매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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