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권력 옥죄기…"시진핑, 금융계-기업 관계 전면조사령"

입력 2021-10-12 11:58  

중국 금융권력 옥죄기…"시진핑, 금융계-기업 관계 전면조사령"
WSJ 보도…은행·보험사·감독기관 등 25개 기관 조사
2015년 주식폭락 후 처음…헝다·앤트그룹 투자한 곳 표적



(서울=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중국 당국이 거대 기술기업과 부동산 기업 대출 등에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금융기관과 민간 기업간 관계를 면밀히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말부터 민간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금융기관과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을 주문했다.
WSJ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조사가 국유 은행, 투자 펀드, 금융 감독 당국 등이 민간 기업과 과도하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고 전했다.
특히 역대 최대 규모인 350조원의 부채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와 세계 최대 차량호출 서비스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그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는 중국 최고 반부패 조사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주도할 예정이며, 25개 금융 기관이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가장 광범위한 조사라고 WSJ은 전했다.
WSJ은 이번 조사가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의 기점이 될 내년 가을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경제 체제를 서구식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광범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앙기율위는 이달부터 25개 금융 기관에서 대출, 투자, 규제 기록 파일을 검토하고, 민간 기업과 관련된 특정 거래나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관계자들은 조사를 통해 부적절한 거래 혐의가 확인되면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조사를 받아야 하며, 이후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인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는 이번 조사가 시작되기 전 열린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어떠한 정치적 일탈도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당국의 대출 규제와 금융 기관에 대한 사정 강화로 중국 은행들은 이미 민간 개발업체와 기타 기업에 대한 대출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분석가들은 주장했다.
베이징대 금융학과 교수인 마이클 페티스는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에는 규제 풍토를 확신하지 못하는 중국 거대 기술기업부터 대출이 중단된 민간 개발업체까지 민간 부문에 닥친 경제활동 둔화가 금융단속 과정에 봉착하는 딜레마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페티스 교수는 "'나쁜' 대출이 없다면 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은 일부 관리를 인용해 시 주석의 목표는 중국 경제를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거대 민간 기업과 국가 권력을 위협하는 다른 권력자들이 금융 부문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WSJ은 이어 이번 금융 기관에 대한 조사는 금융 부문의 방패막이였던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의 영향력 약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왕 부주석은 시 주석 집권 1기(2012~2017)에 중앙기율위 서기를 맡아 반부패 사정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중국건설은행 등 국책 금융기구의 요직에 측근들을 앉혀 권력 기반을 다졌다.
당시 중국 금융 부문은 당국의 조사를 대부분 피할 수 있었고, 국유은행들은 관계가 긴밀한 HNA그룹 등 일부 고위 기업들에 대한 공격적인 대출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 8월 왕 부주석의 측근인 사정·감찰기구인 중앙순시조 부조장을 지낸 둥훙(董宏)이 800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며 왕 부주석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소식통들은 이번 조사에서 중국건설은행의 HNA그룹 대출과 중국 중신(中信)그룹의 헝다 대출 등이 검토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신그룹은 중국 정부의 부동산 대출에 대한 거듭된 경고에도 헝다에 1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중신그룹 외에도 중국 4대 국유은행인 중국농업은행을 포함한 국유은행,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대형 보험사, 국영 펀드 등도 중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 과정에 대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이번 사안과 관련된 한 관계자는 WSJ과 인터뷰에서 "(금융기관들의 투자가)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아니면 소수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지가 (조사의) 핵심 질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in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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