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폴란드에 법적 조치와 보조금 압박 병행할 듯
"개별국 주권과 EU 정치통합 요구 충돌"…'폴렉시트'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폴란드와 헝가리의 극우 진영이 유럽연합(EU)의 가치인 법치주의에 지속적인 도발을 감행하면서 EU의 정치통합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EU 조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EU의 경제·정치적 통합을 지지한다고 약속했던 양국은 극우 정당이 집권하면서 EU와 대립각을 세웠다.
폴란드의 극우파 정당 '법과 정의당'(PiS)은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데 이어 2019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레흐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쌍둥이 형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이 정당은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가치보다는 보수 가톨릭과 전통적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로 개혁한다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을 편다.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자신이 총리에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사실상 내각과 국정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헝가리도 극우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2010년부터 재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EU의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요구가 헝가리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EU와 충돌을 빚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 정책을 펴는 폴란드와 헝가리는 성소수자 인권을 무시하고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며 언론을 탄압하는 등 EU가 요구하는 민주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판받는다.
폴란드 정부와 EU는 최근 '사법 통제' 논란을 두고 공방 중이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 정의당은 2018년부터 하원이 법관을 인선하는 위원회의 위원을 지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여당이 주도하는 하원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길을 터주는 셈이어서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유럽사법재판소(ECJ)가 폴란드 정부의 이 정책이 EU법을 위반했다면서 제동을 걸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 7월 ECJ 결정과 폴란드 헌법 중 어느 것이 상위법인지를 가린다며 폴란드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폴란드 헌재는 7일 EU의 조약이나 결정보다 국내법인 폴란드 헌법이 더 앞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EU법은 헌법을 포함, 개별 회원국의 법보다 상위법"이라며 "ECJ의 모든 결정이 개별 국가의 사법부에 효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EU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EU법 침해 행위에 '법치주의 메커니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법치주의 메커니즘은 EU 회원국에서 민주주의와 법치 등 유럽의 가치에 대한 '조직적인 위협'이 발생할 때 대처하는 절차로 2014년 3월 도입됐다. EU는 2016년에도 폴란드 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데 대해 법치주의 메커니즘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실태 조사와 평가, 그리고 해명기회 부여를 통해서도 만족할 만한 상황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EU 집행위는 EU 기관이나 제도에서 해당 국가의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다.
EU는 법적인 조치 이외에 보조금을 지렛대로 해당 국가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에 EU의 순보조금으로 125억 유로(약 17조3천억원)를 받아갔다. 폴란드는 EU 27개 회원국 중 최대 보조금 수혜국이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7월 코로나19로 타격을 본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7천500억 유로(약 1천4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 기금과 이와 연계된 1조740억 유로(약 1천488조원)의 EU 장기 예산안(2021∼2027년)에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EU는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해 회복기금 지원과 예산 배정에서 법치주의 존중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양국이 기금과 예산안 승인을 거부해 회원국 만장일치의 승인 절차가 지연되기도 했다.
EU는 회원국뿐 아니라 가입 후보국에까지 민주주의 확립과 인권보장, 그리고 사법부 독립 등을 요구한다. 이는 EU 기준에 따른 정치 통합을 완성하기 위해서로, 궁극적으로는 사법통합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EU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도전을 묵과하면 다른 회원국에도 '도미노 효과'를 불러올 것을 우려해 강력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극우파 정당이 계속 집권할 경우 EU의 이런 목표와 이들 국가의 주권적 요구가 자주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악화하면 폴란드나 헝가리가 EU를 탈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폴란드 헌재가 EU와 정면 대립하는 결정을 내리자 폴란드 국민은 "EU를 떠나면 안 된다"며 극우 성향의 정권에 맞섰다.
지난 1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10만명이 모이는 등 폴란드 전역에서 '반정부, 친EU'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특히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를 빗댄 '폴렉시트'(Polexit)가 현실이 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문제 전문가인 알렉스 스체르비악 영국 서식스 대학 정치학 교수는 폴란드와 EU의 갈등은 개별국의 주권과 EU 통합 의지의 충돌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개별 국가가 얼마나 주권을 양보하고 EU는 정치통합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요구를 할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songb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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