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지난 9일 6·25 전쟁 중 미군과 중국군 간의 최대 격전이었던 장진호 전투(1950년 11∼12월)를 소재로 한 중국 영화 '장진호(長津湖)'를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관람했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陳凱歌)와 쉬커(徐克), 단테 람 등 중화권 유명 감독 3명이 제작비 13억위안(약 2천400억원)을 쏟아 만든 3시간짜리 영화는 개봉 13일차인 12일까지 43억위안(약 7천900억원·1억800만명 이상 관람)의 흥행 수입을 올려 '전랑(戰狼·늑대전사) 2'(2017년 개봉)가 세운 역대 중국내 최고 흥행 기록(56억9천400만위안)을 맹추격중이다.
분단의 짐을 이고 사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전쟁을 철저히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의 승전사로 그려낸 중국 영화에 공감하긴 어려웠다. 신냉전으로까지 불리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인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짙게 들었다.
그럼에도 6·25전쟁과 한반도, 북한을 보는 중국인들의 시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기에 관람료 100위안(약 1만8천500원)과 176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만약 이번에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가 싸워야 한다"는 대사였다.
참전한 중국군 장교 메이성(梅生) 역을 맡은 배우 주야원(朱亞文)이 극중에서 딸 사진을 보며 한 이 대사는 영화 후반부에 장진호 전투가 미군을 38도선으로 밀어내는 발판이 됐다는 설명 문구와 댓구를 이뤘다.
즉, 중국이 참전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이라는 나라가 사라진다면 중국은 미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후대가 필연적으로 미국과 전쟁을 치를 것이니 북한이라는 '버퍼존'(buffer zone·완충지대)을 지켜내기 위해 '항미원조' 전쟁에 나섰다는 게 그 대사의 메시지로 읽혔다.
영화는 특히 미군기의 사격에 육신이 파괴되는 중국 군인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선대의 희생을 관람객들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그런 희생을 해가며 지켜낸 북한이라는 버퍼존의 값어치를 영화가 알리고 있는 듯 했다.
결국 영화 장진호는 현재까지 1억명 이상의 중국인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알렸다. 그리고 영화 장진호에 투영된 중국의 대북관을 현 시점에 적용하자면 영화는 남북통일이 미군과 직면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그런 통일을 경계할 이유도 자국민에게 알린 셈이었다.
그리고 기자에게는 한국 주도 남북통일 시나리오 하에서의 주한미군 역할 및 위치 등에 대한 중국의 생각을 짐작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유도하려 하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도 영화 장진호는 '불편한 진실'의 벽을 상기하게 한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평화통일이라면 조건없이 지지하는 입장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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