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기지 공격 능력 유력한 선택지"…헌법 9조 개정에도 의욕
자민당 공약에 'GDP 대비 2% 방위예산비 증액 목표"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집권 자민당 내 비둘기파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외교·안보 정책에서 강경한 색채를 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국의 분수령이 될 총선에서 보수·우파의 지지를 흡수해 권력 안정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가 총재를 겸직하는 자민당의 총선 공약에서 우선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근 여권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주장이 대두한 가운데 이를 암시하는 내용이 안보 공약으로 채택됐다.
공약은 "상대 영역 내에서 탄도 미사일 등을 저지하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포함해 억지력을 향상하기 위한 새로운 대응을 추진한다"고 써있다.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염두에 둔 공약이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은 탄도미사일 발사 시설 등 적국 영역 안에 있는 기지를 폭격기나 순항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해 파괴하는 능력을 말한다.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이 일본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 가운데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이다.
만약 북한이 일본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 공격당하기 전에 관련 시설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결과적으로 선제공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구상이다.
하지만 기시다는 앞서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에 관해 "유력한 선택지"라고 언급하는 등 추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12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후쿠야마 데쓰로(福山哲郞) 입헌민주당 간사장이 '선제공격으로 간주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자 기시다는 "요격 능력을 향상하는 것만으로 정말 국민의 생명과 평화로운 삶은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며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하고 싶다"고 반응했다.
자민당 공약집에는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여러 나라의 국방 예산 대(對) 국내총생산(GDP) 비율(2% 이상)도 염두에 두고 방위 관계비의 증액을 목표로 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간 일본의 방위비가 GDP의 1% 이내에 머문 점을 고려하면 대폭 증액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외교 공약에는 일본 정부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 온 독도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에 관한 국외 홍보를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자민당은 "한국에 의한 국제법 위반 상태나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이유 없는 비난 등 우리나라의 주장이나 명예, 국민의 생명·안전·재산에 관한 과제에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며 일제 강점기 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세도 예고했다.
기시다는 개헌에 대해서도 의욕을 표명했다.
그는 총재 선거 중인 지난달 17일 회견에서 "당이 내건 자위대 명기(明記) 등 (개헌안) 4항목은 모두 중요한 과제다. 차기 총재로서 임기 중 실현을 목표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무상 재직 중이던 2017년 6월에는 "지금 9조 개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자위대 자체는 (현행) 헌법에서도 합헌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은 것과는 대비된다.
당시 기시다는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9조가 일본이 자위대를 보유한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민당은 헌법 규정과 자위대의 존재가 충돌하는 상황을 해소하자는 구실로 자위대 명기 개헌을 주장했는데 기시다도 이에 동조한 양상이다.
결국 자민당 선거 공약에도 자위대 명기 등을 위한 개헌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자민당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인 '고치카이'(宏池會) 출신인 기시다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내 역학 구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의 지지도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전 행정 개혁 담당상보다 한참 낮았던 기시다가 자민당 총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우파의 지주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
기시다는 당내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보수·우파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며 총선 국면에서도 그런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으로 보인다.
정치적 기반 확대가 발등의 불이 된 기시다는 선거 승리를 위해 자신의 색깔을 억제하는 셈이다.
내년 여름에는 참의원 의원의 절반을 새로 뽑는 선거가 예정돼 있으며 양대 선거를 앞둔 기시다가 온건한 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인 '리버럴'(liberal)의 면모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못지않은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이 공약의 실무 책임자라는 점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공약 원안에는 "부부의 씨(氏)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의 존재 방식에 관해 더욱 검토한다"며 부부 별성제 도입에 관한 내용이 있었으나 최종판에서 삭제됐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