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포토] 내전 악몽 떠올리게 한 베이루트 총격전

입력 2021-10-15 17:15   수정 2021-10-22 15:04

[월드&포토] 내전 악몽 떠올리게 한 베이루트 총격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의 타유네.
기독교도와 시아파 무슬림 거주지역 사이의 원형교차로를 지나던 시위대의 머리를 겨냥해 총탄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한 무장 정파 헤즈볼라 대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소총과 수류탄 투척용 로켓 추진 장치 등이 불을 뿜습니다.

그렇게 시가전을 방불케 한 총격전은 몇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6명. 부상자도 30여 명이나 됩니다.



한낮에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총격전은 피로 얼룩진 거리와 인근의 학교 유리창 등에 선명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인근 학교에서는 겁에 질린 채 아이들이 교실 한복판에 엎드렸고, 이어 출동한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서둘러 귀가했습니다.
도심에서 민간인들이 총격전을 벌이게 된 건, 장기 내전을 거치고 다양한 무장세력의 활동이 이어지면서 군용 무기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드 알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는 이번 사건이 15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1975∼1990년 내전을 떠올리게 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배경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발 사건(핵폭발 제외)으로 기록된 지난해 8월 베이루트 대폭발입니다.

사법당국의 진상조사를 주도하는 판사에게 불만을 품은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고, 아직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이 시위를 겨냥해 먼저 총격을 가한 겁니다.
헤즈볼라는 공격의 배후로 기독교계 정당을 지목했습니다.
기독교계 정당이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헤즈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양측간 충돌이 본격화하면 안 그래도 국가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한 레바논은 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레바논 정부는 15일을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했습니다. 관공서와 학교, 은행 등 모든 공공시설과 상업시설이 문을 닫은 가운데 희생자의 장례가 치러집니다.

추모일이 지나면 본격적인 사건 수사와 진상조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결과가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베이루트 시민들의 삶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지 않기를 국제사회는 기원하고 있습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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