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일행, 국제사회 규범 준수·인권 존중 등 요구
무타키 장관, 지원 및 제재 해제 요청…서로 입장만 확인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한국 정부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 정부 붕괴 후 처음으로 고위급 접촉을 벌였다.
28일 외교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최태호 주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전날 오후 카타르 도하의 한 호텔에서 현지 13개국 대사 일행과 함께 아미르 칸 무타키 탈레반 외교부 장관 대행과 회동했다.
한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 8월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탈레반 지도부와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대사는 이날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 일본 등 도하에 있는 13개국 대사 일행과 동석했다.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할 때 탈출, 현재 도하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한 상태다. 도하에는 탈레반의 대외 창구격인 정치사무소가 있다.
한 외교 관계자는 "이번 회동은 약 1시간가량 이어졌는데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이날 만남에서는 서로가 입장만 확인하는 등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려운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대사 일행은 탈레반 측에 국제사회 규범 준수, 인권 존중, 아프간 출국의 안전한 통행 보장, 테러 근절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EFE통신은 이날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 등도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무타키 장관 대행은 집권 후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다고 자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문제가 있다며 국제사회의 지원과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국제사회는 아직 탈레반 과도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문제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탈레반이 재집권 후 인권 존중, 포용적 정부 구성 등을 약속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탈레반 과도 정부가 국제사회 규범 준수, 인권 존중, 테러리즘 부상 방지 등을 이행해야 관계 재설정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도 대사 일행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카타르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만남과 관련해 탈레반 외교부 대변인인 압둘 카하르 발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무타키 장관은 새로운 아프간 정부는 책임 있는 정부로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모든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발키 대변인은 "대사 일행은 무타키 장관의 언급에 만족을 표시했으며 앞으로도 이런 만남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20년 만에 아프간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등에 예치된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화 90억 달러(10조5천억원)가 동결된 데다 국제사회의 원조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가뭄, 기근, 물가 폭등, 실업자 폭증 등이 겹치면서 현지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탈레반은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과도정부 체제를 끝내고 공식 정부를 출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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