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버금가는 인기…집값 치솟으면서 지원자도 몰려
IMF·부동산 활황 때도 인기 급등…최근엔 MZ세대도 가세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공인중개사에 도전하는 사람 수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때는 '중년의 고시(高試)'로 불렸는데 지원자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제2의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29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30일 시행될 제32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1차와 2차 시험 원서접수자는 총 39만9천917명으로 역대 최다다.
원서를 접수했다가 나중에 취소한 사람까지 합치면 40만명이 넘었다.
공인중개사 시험 원서접수자 수가 수능(작년 49만3천434명)을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집계에는 1차와 2차 시험을 한날 같이 보려는 사람이 중복돼 계산됐기 때문에 실제 시험을 보는 사람은 접수자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저출산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사람이 줄어드는 가운데 공인중개사 도전자는 증가세를 유지해 관심이 쏠린다.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1985년 실시됐다.
1983년 12월 '부동산중개업법'(현 공인중개사법)이 제정되면서 공인중개사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1회 시험엔 19만8천여명이 지원했고 15만7천여명이 시험을 쳤다.
합격자는 6만277명으로 합격률은 비교적 높은 38.2%였다.
이때 지원·응시자는 2~8회 시험(지원자 수 평균 5만1천403명·응시자 수 평균 3만5천353명)에 견줘 두드러지게 많았다.
1회 시험에 사람이 몰린 것은 부동산경기가 상승세였던 데다가 첫 번째 시험은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인중개사 시험 지원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시점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인 1997년이다.
그해 11월 치러진 9회 시험엔 12만485명이 지원해 1회 때 이후 처음으로 지원자가 10만명을 넘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이유에서 '위기 대비'가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9회 시험 응시율과 합격률이 각각 58%(응시자 6만9천953명)와 3%(2차 시험 합격자 3천469명)로 낮았다는 점을 보면 이때 준비 없이 다급히 시험을 본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이 다시 인기를 끈 때는 2002년으로, 이때는 2000년대 들어 부동산시장 경기가 회복세에 올라선 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2년 13회 시험 지원자는 26만5천995명으로 처음 20만명을 넘었다.
부동산시장 활황세를 타고 커졌던 공인중개사 시험 인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꺼졌다.
공인중개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시장이 포화한 점도 인기 하락 원인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 집값이 다시 뛰면서 공인중개사 시험 인기도 뛰었다.
작년 치러진 31회 시험은 지원자가 34만3천여명, 응시자가 22만6천여명이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여전히 '만일에 대비한 보험'처럼 여겨진다.
여태까지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총 46만6천590명으로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4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실제 중개업무를 하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올해 2분기 11만7천737명에 그치는 점을 보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보험처럼 따둔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집값이 치솟으면서 '보험용'이라는 인식은 많이 사라졌다.
이달 중순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개편되기 전까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매매하면 중개보수가 약 900만 원이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2억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인중개사로선 거래를 몇 건만 성사시켜도 웬만한 직장인 몇 달 치 월급을 중개보수로 버는 셈이다.
집값이 뛰면서 이른바 'MZ세대'도 공인중개사에 도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집값은 끝모르게 오르고 관련 규제는 복잡해지면서 '부동산 투자법'을 입시를 치르듯 공부해야 하다 보니 '이럴 바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자'라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31회 시험의 경우 응시자 가운데 30대 이하가 8만6천369명(1차 6만744명·2차 2만5천625명)으로 전체의 38%를 차지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는 직장인 이모(33)씨는 "재작년 생애 처음 집을 사본 뒤 부동산거래에 관해 잘 모르면 손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산을 늘리려면 앞으로 부동산 투자를 안 할 수도 없을 텐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못 따도 공부를 해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장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공인중개사 시장이 포화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오는 데다가 일각에선 이제 집값이 고점을 찍었고 '부동산 시장 빙하기'를 앞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개업한 공인중개사는 1만2천705명이고 같은 기간 폐·휴업한 공인중개사는 8천945명이다.
개업하는 공인중개사 대비 폐·휴업하는 공인중개사는 매년 80% 수준이다.
문 여는 중개사만큼이나 문 닫는 중개사도 많은 것이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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