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업의 근간인 네트워크 관리는 소홀히 말아야"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기자 = 2021년 10월 25일 오전 11시 16분. 전국적으로 KT[030200] 통신장애가 시작된 이 시각은 공교롭게도 KT의 'AI(인공지능) 통화비서' 출시 기념 간담회가 끝나던 때였다.
KT가 오래 공을 들여 준비한 이 간담회는 회사 차원의 '탈통신' 의지가 반영된 행사였으나 같은 날 발생한 장애사고에 묻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조금이나마 주목을 끌었다면 "탈통신 한다고 하기 전에 본업인 통신이나 잘 하라"라는 비난과 함께였다.
직접적인 사고 경위를 넘어 배경을 더듬어 보면 KT가 디지털 플랫폼 기업 '디지코(digico)'로의 변화를 선언하면서 통신사업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노조 등으로부터 나온다.
3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구현모 대표 취임 이후 5G와 AI,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에 매진해 왔으나, 정작 통신업체로서 기본인 네트워크 관리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이번 장애 발생 경위를 보면 KT가 무모할 정도로 안이하게 통신망을 관리해 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명령어 점검이 제대로 안 된 사고가 불씨가 돼, 통신망을 타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지면서 엄청난 불길로 커졌다.
사전 테스트도 하지 않고 협력업체 직원들끼리 작업하다가 발생한 일이었다. 당시 작업을 감독했어야 할 관리자는 다른 업무로 자리를 비웠다.
원래 야간 시간대에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고 원래 승인 시간도 새벽 1∼6시였던 네트워크 작업을 '야간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며 낮 시간대에 했다는 사실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조사에서 드러났다.
KT는 사고 후 대응도 우왕좌왕이었다.
라우팅 설정 명령어 입력 과정에서 'exit'이라는 명령어 하나를 누락해 전국적인 장애가 일어났으나, 초기 2시간 동안 KT는 이 사고의 원인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라며 외부의 탓으로 돌렸다.
후속 조치는 더 늦다. 사고는 월요일인 25일 발생했지만, KT는 주말을 맞아서도 보상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언제 보상안을 내놓을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구현모 대표는 현행 약관을 뛰어넘는 보상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보상안 발표를 계속 미루면서 과연 이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사고는 KT가 네트워크 관리 업무의 '외주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KT는 내년 네트워크 관련 인력 1천명을 다른 부서에 재배치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 9월 노사 임금·단체 협상안을 통해 인터넷 프로토콜(IP) 액세스와 지역전송 등 네트워크 관련 업무를 유관 그룹사로 이관하거나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런 방침을 고집하다가는 지금도 위태로운 네트워크의 관리 수준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사업자로서 AI 등 '미래 먹거리'를 찾는 노력은 좋지만, 네트워크 관리라는 사업의 근간은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주문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KT에 쏟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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