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전 무의미" 장관 발언에 걸프국 일제히 반발…역내 갈등으로 번져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3개월 만에 가까스로 국정 공백을 메꾼 레바논이 예멘 내전을 비판한 각료의 발언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에 처했다.
레바논 장관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아라비아 연합군을 비판하며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언급하자 사우디는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를 추방하고, 레바논으로부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날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에게 48시간 이내에 떠나도록 통보하고 레바논에서의 물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또 사태 협의를 위해 레바논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고 사우디 국영 SPA통신이 보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5일 방영된 조지 코르다히 레바논 정보장관 인터뷰에 사우디가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코르다히 장관은 이 인터뷰에서 "후티 반군은 외부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연합군으로 인해 사람들의 터전과 마을이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멘 전쟁이 "무의미"하다며, 이제 끝낼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 연합군은 2015년부터 예멘 내전에 개입해 시아파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와 격전을 벌이고 있다. 2014년 촉발된 이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진 예멘 내전으로 현재까지 13만 명 이상이 숨지고 4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코르다히 장관의 발언은 사우디를 넘어 주변 걸프 국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수니파 맏형 사우디를 따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도 잇따라 레바논 대사를 추방하면서 갈등이 주변 걸프국으로 확장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달 출범한 이후 베이루트 폭발참사 진상조사에 매진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거의 없는 새 내각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해 8월 베이루트 대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하산 디아브 전 총리 내각이 일괄 사퇴한 이후 13개월간 국정 공백이 이어진 끝에 지난달에야 가까스로 새 정부가 구성됐다.
특히 폭발참사와 코로나19, 국정 공백과 맞물려 크게 악화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아랍권 지원을 호소하는 나지브 미카티 총리는 그간 경색됐던 아랍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사우디 등 다수의 아랍국가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끼친다는 이유로 레바논과 거리를 두고 있다.
레바논 총리실은 이날 "아랍의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아랍 지도자들에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협조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코르다히 장관은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레바논 총리실에 따르면 미카티 총리는 이날 저녁 코르다히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레바논과 아랍국가와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사실상 코르다히 장관을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코르다히 장관은 사우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문제의 인터뷰가 장관 취임 약 한 달 전인 지난 8월 초 촬영됐으며, 당시 내각 구성원이 아닌 개인으로 의견을 낸 것 뿐이기에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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