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연합뉴스) 정동철 통신원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일 오후(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의 명소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사이 서큘러키에서 갑자기 낭낭한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4.5m 높이와 3t 무게의 술래 로봇 인형 '영희'의 머리가 빙 돌자 찬물을 끼얹은 듯 참가자들의 동작이 일제히 멈췄다.
그러자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스산한 음악이 깔리며 분홍색 제복의 진행 요원에 의해 적발된 탈락자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호주 넷플릭스가 지난달 29일부터 나흘간 시드니 하버에 설치한 '오징어 게임' 체험장에 1만명 가까운 인파가 다녀가는 등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행사 마지막 날인 지난 1일 오후 체험장 입구에는 참가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 증명을 제시하고 QR 코드를 확인했다.
대다수 참가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입장을 기다리면서도 드라마에서 본 '영희' 인형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분홍색 제복을 입고 체험장을 찾은 유학생 송모(32)씨에게는 옆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기도 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 친구가 드물었다"면서 "'영희'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를 보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징어 게임'의 열성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로라(24) 씨는 "이 드라마는 욕심 많은 어른이 된 사람들이 어린 시절 즐기던 순진한 게임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역설을 담은 특이한 작품"이라면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게임에 나오는 로봇 인형을 실제로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고 했다.
로라와 함께 체험장을 방문한 베키(24) 씨는 "시리즈 한편 한편이 재미 있지만 끔찍하기도 해서 한쪽 눈을 감고 보다시피 했다"면서 "한국 드라마가 이렇게나 독특한 감흥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체험한 후 '영희' 인형 앞으로 다가가 진행 요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느라 북적였다.
이들은 깜짝 놀라거나 두려움에 떠는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드라마의 살벌한 분위기를 재현하며 시드니에 나타난 '오징어 게임'을 즐겼다.
시드니에서 전문 곡예사로 활동하는 조시 프로그(25) 씨도 '오징어 게임'에 반한 열혈 호주인이다.
그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좋아해 하루속히 시즌2가 나오기를 고대한다"면서 "이번 체험 행사는 실물 크기의 인형과 배경 음악이 어우러져 드라마의 느낌을 잘 살렸다"고 평가했다.
프로그 씨는 '영희' 인형 앞에서 여러 번 공중회전에 성공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행사 현장을 찾은 한국인 정모씨는 "오래전 한국 국어 교과서에 '철수'의 단짝 친구로 나왔던 '영희'가 호주 시드니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짓궂은 '여신'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줬다"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dc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