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프로그램 교란? 손상 치유하려다 '암 취약성' 키워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진, 저널 '위장병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췌장암은 가장 위험한 암 유형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0% 정도다.
그런데 2030년이 되면 미국의 암 사망 원인 2위가 될 거로 예상된다. 그만큼 췌장암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를 바꾸려면 새롭고 혁신적인 췌장암 치료법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공중 보건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 분야 연구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췌장 조직이 손상되고 종양이 발생하는 초기 과정을 더 잘 이해하게 돕는 췌장 선포 세포(acinar cells)의 반응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췌액을 분비하는 선포(腺胞·샘 꽈리) 세포가 조직 손상에 반응하는 과정을 초 고해상 영상으로 포착했다.
또 선포 세포에 의해 생성되는 다양한 세포 유형이 어디서 유래하는지도 확인했다.
선포 세포의 이런 손상 반응 과정은, 췌장암과 췌장염 등 치료에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다.
이 연구는 미국 밴더빌트 의학 기초과학대와 소크 생물학 연구소 과학자들이 공동 수행했고, 관련 논문은 소화기 분야 전문 학술지 '위장병학(Gastroenterology)'에 최근 실렸다.
2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췌장의 선포 세포가 새로운 유형의 세포를 생성하는 건 조직 손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암성 돌연변이(cancerous mutations)가 생길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밴더빌트대의 캐시 델 조르노(Kathy DelGiorno) 세포 발달 생물학 조교수는 "췌장의 손상 치유 메커니즘과 함께, 이런 반응 과정이 어떤 경우에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지도 더 잘 이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단세포 RNA 염기서열 분석, 초미세 구조 전자현미경, 유전자 조작 실험 모델, 췌장 손상 환자의 조직 샘플 등을 이용해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학제적(multidisciplinary) 분석을 시도했다.
환자의 조직 샘플은 췌장의 손상 반응으로 생기는 여러 세포 유형을 확인하는 데 쓰였다.
그런 다음 위(胃) 손상, 종양 유전자 유도 췌장 종양 형성, 췌장염 등에 관한 기존 데이터와 비교해, 생물 종과 생체기관 계(species and organ systems)에 어떤 유사 과정이 보존돼 있는지 확인했다.
여기서 이뤄진 발견은 학계의 오래된 논지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소크 연구소 유전자 발현 실험실의 제프리 왈(Geoffrey Wahl) 석좌교수는 "세포에 감염이 생기면 정상 환경에선 조직 복구에 도움이 되는, 더 원시적이고 유연한 발달 상태로 세포 프로그램이 재구성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췌장암에 관여하는 RAS 같은 종양유전자에 의해 이 과정이 전복되는 게 문제였다.
암 같은 질병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되레 악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다루기 어려운 암 가운데 하나'인 췌장암의 진행도 이런 전복 과정과 관련이 있을 거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밴더빌트대 연구팀은 이번에 확인된 선포 세포 유래 세포 유형들의 혈통 발달 궤적과 기능적 역할 등을 더 상세히 연구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유전자 조작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실험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델 조르노 교수는 "췌장의 조직 손상, 재생, 종양 생성 등에서 이들 세포 유형이 생리학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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