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대인 랍비가 탄생할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 유대교 회당을 짓고 사우디의 첫 랍비가 되려고 하는 제이콥 헤르조그(45)의 사연을 전했다.
헤르조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으로, 현재 아내와 8명의 자녀와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다.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이슬람 외 다른 종교활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기독교 의식은 오랫동안 비밀리에 이뤄지다 최근 와서야 당국에 의해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유대교 의식이 공개적으로 치러진 적은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인 헤르조그는 지난달 사우디에 처음 입국한 이후 계속 수도 리야드를 오가며 사우디 왕실과 친분 있는 사업가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유대교 전파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헤르조그는 "왕세자는 하이테크 기술이 접목된 미래도시인 네옴 신도시를 추진 중인데, 이 도시에 많은 유대인이 일자리를 찾아서 모여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사우디나 미국 정부는 헤르조그의 도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워싱턴 사우디 대사관은 헤르조그가 입국할 때 신분을 '미국인 여행자'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사우디는 오랫동안 종교간 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우리 지도자들도 많은 타종교 지도자들과 만났지만 헤르조그의 방문은 그런 노력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36살의 젊은 빈 살만 왕세자는 개혁 성향일지라도 아버지 살만 왕은 팔레스타인의 독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헤르조그는 주사우디 미국대사관에도 현지 유대인과 연결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대사관측은 그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워싱턴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과 접촉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현재 사우디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수백명, 많아도 수천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대인은 거의 천 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 살아왔지만 20세기 중반에 거의 다 이슬람으로 개종했거나 추방됐다.
헤르조그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자신의 도전에 대해 "때로는 '믿음의 도약'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믿음의 도약이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종교적 신념 등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사우디에 첫 유대인 랍비가 생기는 것이 완전히 어려운 일로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일부 아랍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형성하면서 일부 국가에 유대인 커뮤니티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바레인의 경우 유대인이 수십 명 규모에 불과하지만 유대교 법정과 유대인 율법에 맞춰 만드는 음식인 '코셔' 인증 기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유대식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수천 명가량의 유대인이 있는 아랍에미리트에선 4명 이상의 랍비와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생겨났다.
헤르조그는 언젠가 때가 된다면 그가 사우디의 첫 랍비가 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사우디에 대한 그의 '구애'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 헤르조그는 맹장염 수술을 한 빈 살만 왕세자를 위해 기도하고 유대인 전통 악기인 '쇼파'(shofa)를 부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이스라엘 외교부가 운영하는 아랍어 트위터 계정에 올라갔고 일부 사우디 매체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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