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권 요구하는 반정부 티그라이 부족과 정부군 무력충돌 1년
80개 부족 뒤섞인 연방 통치체제 정국 혼란 빈번
아머드 총리, 2년전 수상 노벨평화상 퇴색…국제사회 중재 시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불과 2년전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아프리카의 희망으로 떠오른 에티오피아가 내전의 '블랙홀'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달 2일로 꼭 1년이 지난 에티오피아의 내전의 전선은 중앙정부의 연방군과 반군의 군사충돌이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수도'로 불릴 만큼 대륙의 안보와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지정학적 의미가 큰 에티오피아의 내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제사회는 중재하려고 노력하지만 정부와 반군이 내건 조건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종착점은 멀어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5일 에티오피아 휴전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2일 에티오피아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양측 갈등이 격해져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논의에 나선 것이다.
◇자치 원하는 북부 티그라이 정파와 연방정부 '정면충돌'
지난해 11월 3일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지역 정파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가 지역 내 연방군 막사를 공격했다면서 연방군을 투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티그라이는 에티오피아 북부의 에리트레아와 맞닿은 국경에 자리잡은 지역이다.
표면적으로는 선공에 대응한다는 명분이었지만 TPLF가 두달전 지방선거를 단독으로 강행했고, 중앙정부는 이에 신경을 곤두세운 터였다.
중앙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전국 지방선거를 연기했지만 TPLF는 이에 반발하며 자신의 통제하는 티그라이 지역에서 선거를 치렀다.
선거를 연기하면 아머드 총리의 임기가 연장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구 1억여명, 부족 80여개로 구성된 에티오피아는 10개 준자치 지방정부로 구성된 연방국으로 자주 부족간 갈등에 휘말리곤 했다.
TPLF는 아머드 총리가 2018년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30년 가까이 에티오피아 연립정부를 구성해 집권하면서 정계를 주름잡았다.
에피오피아 최대 부족 오모로족 출신인 아머드 총리는 취임한 이후 부족 갈등 해소를 위한 개혁 일환으로 부족간 연정을 해제하고 단일정당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티그라이 지역 관리들을 부패와 인권유린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이에 반발한 TPLF는 중앙 정계에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내전 초기엔 연방군으로 전세가 기울었으나 이후 반군이 역습에 성공하면서 1년이 지난 지금 티그라이 지역을 넘어 사실상 전국적 내전으로 커졌다.
내전이 길어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한 것은 물론 각종 비인도적인 범죄가 횡행했다.
◇ 북부 티그라이 지역 넘어 확대…외세 개입까지
내전은 애초 전쟁이 시작됐던 티그라이 지역을 넘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TPLF는 에티오피아 북단 티그라이 지역에서 인근 암하라, 아파르 지역까지 남하하면서 연방군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이어지는 핵심 도시 데시와 콤볼차 지역을 점령해 중앙정부가 수세에 몰렸다.
여기에 아머드 총리에 대항하는 오로모 분리주의 무장단체 오로모해방군(OLA)이 TPLF에 합세하면서 반정부 세력이 불어났다.
티그라이 세력과 관할지역 분쟁을 벌이는 암하라의 민병대는 아머드 총리와 손잡고 반군에 맞서고 있다.
경계를 맞댄 부족간 구원이 내전에 스며들면서 내전 방정식에 변수가 많아진 것이다.
아머드 총리는 이웃 에리트레아와 오랜 국경분쟁을 해결한 공로로 201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티그라이와 불화를 빚는 에리트레아와 손잡고 티그라이 반군과 맞선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실상 내전을 지속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 정부, 티그라이 봉쇄…구호물품·통신·의료 등 차단
정부가 티그라이 지역을 봉쇄하며 고립시키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500만명 이상이 식량 위기에 처했으나 에티오피아 정부는 구호물품을 비롯해 공공 서비스까지 원천 차단하고 있다.
현재 티그라이 지역을 비롯해 암하라, 아파르 일부 지역에는 통신, 전력, 은행 등 필수 서비스까지 차단됐다.
TPLF 지도부는 이 제한 조치를 대화가 아닌 전투로 풀겠다고 선언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반군 지역에 무기가 반입된다며 국제사회에서 보내는 인도적 지원도 차단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아웨트 웰데미첼 퀸스대학교 역사 교수는 "국가 기능성 측면에서 에티오피아는 부분적으로 붕괴했다"며 "국가가 국민에게 기본 서비스를 제공 못 하면 무너졌거나 무너지는 중인 국가인데 이게 바로 에티오피아다"라고 말했다.
◇ 중앙정부·반군 평화협상 '치킨게임'
정부와 반군이 협상테이블에 오르기 전부터 전제 조건을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내전이 계속되는 이유다.
분리주의 성향인 TPLF 지도부는 연방정부와 갈등이 심화한 이후 자치를 인정해야 협상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반면 연방정부는 TPLF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일축한다.
오히려 군사력을 키우는 전략을 선택하면서 양측의 군사력 증강 싸움은 '치킨게임'을 달리고 있다.
TPLF 군사령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들(정부)은 전쟁터에서 해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며 "이 나라를 나락으로 빠뜨린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3일 에티오피아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서 "모든 내전 당사자가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극단적 잔학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를 촉구했다.
에티오피아 내전 상황이 악화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중재안을 끌어내고자 노력 중이다.
에티오피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대한 미국 특사인 제프리 펠트만은 군사 작전을 중단하고 휴전을 시작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4일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유럽연합(EU)과 동아프리카 블록인 정부간개발기구(IGAD)도 정전을 촉구하는 데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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