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추진 27년 만에 건립

입력 2021-11-06 10:40   수정 2021-11-07 15:39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추진 27년 만에 건립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을 추진한 지 27년 만에 세워졌다.
6일 오전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선 강창일 주일본 한국대사와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등 한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1만명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제에 의해 공업 지역인 나가사키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 노동자 등 우리 동포가 미군의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른 원폭 투하 지역인 히로시마시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현지 평화기념공원에 건립돼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 5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지만,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어 추모 행사를 열지 못했다.



이에 민단 나가사키 본부는 1994년 5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위해 나가사키시에 장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1994∼1997년 평화공원 재정비 공사 때문에 장소 제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던 위령비 건립은 2011년 3월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나가사키시에 건립 진정서를 내고, 이듬해 11월 주후쿠오카(福岡)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평화공원 내 위령비 건립 장소 제공을 요청하면서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2013년 7월에는 민단 나가사키 본부를 중심으로 건립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가사키시 측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인 강제 징용 관련 비문 내용과 위령비 크기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위령비 건립위를 중심으로 시 당국 및 의회와 끈질기게 교섭해 지난 3월 부지 제공 승인이 났고, 지난달에는 비문 문구 등에 대한 세부 협의도 마쳤다.
비문 내용과 관련해선 시 당국이 반대한 '강제 동원'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는 것으로 절충했다.
위령비 안내문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 군인 및 군무원으로 징용, 동원되는 사례가 증가했다"며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배경이 설명돼 있다.
위령비 크기 문제는 건립위는 당초 높이 3.5m로 만들려고 했지만, 나가사키시의 의견을 받아들여 3m로 낮췄다.
나가사키시 평화공원 한쪽 구석에는 197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과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건립된 작은 크기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일민단 주도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주도한 강성춘(63)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현 지방본부 단장은 "재일 한국인 동포의 손으로 염원이던 나가사키(長崎) 원자폭탄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드디어 건립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ho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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