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출병의 희생이 된 조선 사람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공양을 올립니다"
임란 때 왜군이 베어서 가져간 조선인 귀 무덤서 진혼제
(쓰야마[일본 오카야마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런 잔혹한 짓을 했다는 것을…(중략) 4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일본인으로서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일본 시민단체가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의 한 귀 무덤에서 420여년 만에 임진왜란(1592∼1598) 때 희생된 조선인의 영혼을 위로했다.
시민단체인 '교토에서 세계로 평화를 퍼뜨리는 모임'(교토평화모임)은 8일 오카야마현 쓰야마(津山)시 소재 미미즈카(耳塚·이총)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비석(이하 위령비)을 최근 설치한 것을 계기로 이날 제막식과 진혼제를 열었다.
미미즈카는 임진왜란 때 왜장이나 왜군들이 전쟁 공로를 증명하기 위해 베어서 가져간 조선군과 조선 민중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귀 외에도 코까지 베낸 후 가져가 매장한 사례가 파악되면서 '귀·코 무덤'이라는 뜻의 미미하나즈카(耳鼻塚·이비총)라고 부르기도 한다.
쓰야마시의 귀 무덤은 수년 전 현지 시민단체가 안내판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는 귀를 부처로 모셨다는 의미를 담아 '미미지조'(耳地藏)라고 불렀으며 이 때문에 임진왜란 희생자의 귀 무덤이 아니라 참배하면 귓병을 낫게 해주는 신비한 장소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교토평화모임이 최근 설치한 위령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출병의 희생이 된 조선반도(한반도를 의미함) 사람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공양을 올립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조선반도와 일본의 우호관계를 기원하며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한국어와 일본로 새겨져 있다.
비석을 건립하기 위해 일본에서 약 250명이 성금을 냈다.
이날 행사에는 일제 강점기에 벌어진 일본의 가해 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사죄의 뜻을 표명해 온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도 참여했다.
진혼제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에서 행한 잔혹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는 "상처를 준 쪽은 잊기 쉽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쪽은 그 마음을 오랫동안 계속 가지고 있다. (중략) 상처받은 사람에게 사죄하는 마음은 영구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일본인의 '무한 책임'을 강조했다.
한일·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인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아마키 나오토(天木直人) 교토평화모임 사무국장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가 전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 됐다면서 "일본 국민과 한반도 사람들의 역사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 바꿔 말하면 일본 국민은 너무 (역사를) 모른다"고 이유를 진단했다.
그는 "이런 인식의 차이야말로 일본 국민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위령비 설치를 위해 귀 무덤이 소재한 토지 소유자와 협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한 나카시마 간이치(中島完一) 쓰야마 시의원은 한일 관계가 "지금 최악의 상태이므로 (이번 행사를 계기로) 더 좋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토(京都)에 있는 귀 무덤 진혼제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매년 따로따로 열었는데 이날 쓰야마시의 진혼제에는 민단 오카야마현 지방본부와 조선총련 오카야마현 본부 관계자가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언론 외에도 지역 방송사인 TV 쓰야마 등 현지 매체들이 현장에서 취재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