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피해 운동가 절반, 이스라엘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NGO 소속
운동가들 배후로 이스라엘 의심…"유엔이 진상조사해 배후 밝혀야"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다국적 해킹 스캔들의 중심에 선 스파이웨어 '페가수스'가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들의 휴대전화에 침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AP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킹 대상이 된 일부 인권 운동가의 소속 단체는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지난달 테러단체로 지정된 바 있다.
아일랜드에 본부를 두고 위기에 처한 인권운동가를 지원해온 비영리단체 프런트라인 디펜더스는 6명의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가들의 휴대전화에 해킹 프로그램 페가수스가 침투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페가수스는 이스라엘의 민간 보안업체인 NSO 그룹이 만든 스파이웨어(사용자 몰래 컴퓨터, 휴대전화에 잠입해 개인정보를 빼가는 소프트웨어)로 휴대전화에 저장된 정보는 물론 실시간 통화 내용도 파악할 수 있다.
멕시코와 헝가리,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대통령은 물론 야권 인사와 언론인, 외교관, 종교인 등의 뒤를 캐는 데 악의적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일면서 국제적인 스캔들로 비화했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이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최근 개발업체인 NSO 그룹을 제재했다.
이번 포렌식 결과는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와 토론토대학 시티즌램 보안 연구자들의 공동 기술 보고서를 통해 독립적으로 확인됐다.
해킹 피해를 본 활동가들 가운데 절반은 최근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목된 비정부기구(NGO)에 소속돼 있다.
나머지 3명은 익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런트라인 디펜더스의 모함메드 알-마스카티는 "누가 이 스파이웨어를 침투시켰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단체는 지난달 중순 2건의 첫 번째 스파이웨어 침투 사례가 확인된 직후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6개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킹 피해자 중 최소 2명도 이스라엘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면서, 해킹 사실이 발각되자 '물타기용'으로 테러단체 지정 발표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난달 22일 여성 단체인 팔레스타인 여성 연합위원회(UPWC) 등 6개 단체를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들 단체가 각종 위조서류 등을 이용해 유럽 국가와 국제기구로부터 많은 돈을 받아 극좌 무장세력인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당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국제사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NSO 그룹은 관련 질의에 "계약상 그리고 안보상의 이유로 고객을 공개하지 않으며, 고객들이 누구를 해킹했는지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심각한 범죄나 테러에 맞서는 정부 기관에만 제품을 판다"고만 답했다.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은 유엔이 이번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중심도시 라말라에서 활동하는 알-하크의 아신 일라얀은 "인권운동가들의 전화기를 해킹한 자들의 배후가 누구인지 유엔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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