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15년 징역형 왕실모독죄 놓고도 국제사회 "개정" vs 태국 "불가"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태국의 군주제 개혁 움직임이 벽에 부닥쳤다.
헌법재판소가 '군주제 전복 시도'라는 꼬리표를 붙였기 때문이다.
11일 일간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태국 헌재는 지난해 8월 반정부 인사 3명이 한 군주제 개혁 요구는 입헌군주제를 전복시키려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인권변호사 아논 남파와 반정부 활동가 파누퐁 짯녹및 파누사야 싯티찌라와따나꾼의 행위가 헌법 49조를 위반했는지를 가려달라는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헌법 제49조는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재판관 중 다수는 세 명의 행위가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약화하고 전복시키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려 한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세 사람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런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10일 탐마삿대 랑싯 캠퍼스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탐마삿대 학생인 파누사야는 군주제 개혁 10개항을 공개적으로 낭독해 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입헌군주국인 태국 사회에서 국왕은 신성시되는 존재인 만큼, 군주제 개혁을 언급하는 것은 기존에는 금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인 아논도 지난해 '군주제 개혁·총리 퇴진·군부정권 제정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앞서 군주제 개혁을 처음으로 공개 언급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논과 파누퐁은 왕실모독죄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수감 중이다.
헌재 판결 이후 파누사야는 SNS에 "그들은 내가 (군주제) 개혁만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군주제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는 헌재 판결이 왕실모독죄 관련 형법 개정안의 의회 상정 움직임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밝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태국 형법 112조에 규정된 이른바 '왕실 모독죄'는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야당은 왕실모독죄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형량을 대폭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왕실모독죄에는 문제가 없다고 언급해 비판받았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최대 15년형은 너무 가혹하다면서, 형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그러나 태국 여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왕실모독죄가 문제가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전날 방콕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등 8개국 대표단이 태국 정부에 이 법의 개정 또는 재검토를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미국 대표단도 왕실모독죄 적용을 확대하는 것과 이로 인한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국 외교부 대표는 왕실모독죄는 군주제가 국가의 주요 기둥 중 하나이자 국민 다수에 의해 높이 숭배받는 태국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군주제 및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반박했다.
태국 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태국 변호사들'(TLHR)에 따르면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왕실모독죄로 처벌된 이는 미성년자 12명을 포함해 최소 155명에 달한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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