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 총살 기억에 아파"…영국서 함께 눈물 흘린 남북 여성들

입력 2021-11-12 09:19  

"두 딸 총살 기억에 아파"…영국서 함께 눈물 흘린 남북 여성들
"영상통화 되는 세상에 북한 부모에겐 편지도 못보내…통일 열망"
영국 거주 남북 동포여성 평화포럼…블링컨 미 국무장관 여동생도 관심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자식들이 총살당한 일을 다시 들추려니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성들이 만나서 마음을 열고 따뜻한 손으로 서로 만지다 보면 평화통일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 이미란씨의 발언이 끝나자 행사장엔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70세 가까운 나이의 이 씨가 탈북 중에 겪은 어머니로서 아픔을 털어놓자 비슷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뿐 아니라 한국 출신 여성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나눈 것이다.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선 주영 한국대사관과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공동주최로 제2차 남북출신 동포 평화포럼이 개최됐다.
영국에 사는 남북 출신 여성들이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 동포 화합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거의 처음이다.
영국은 한국인들과 탈북민이 어울려 사는 유일한 서구 국가로, 현재 영국에서 사는 탈북민은 500∼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외곽의 한인타운 뉴몰든 지역에선 남북 동포가 이웃, 가게 직원과 고객, 집주인과 세입자, 학부모 등의 여러 관계로 엮여 지낸다.

이날 참가자들은 서로 이해를 높이고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열망을 공유했다.
탈북민 출신 패널들은 북한 출신 여성의 '센' 이미지에 관해 진솔한 입장을 밝히고 통일을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박미소 재영조선인협회 홍보부장은 "북한 출신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고 말투가 공격적이며 세다고 하는데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비치는 상황에 속이 쓰리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난의 행군과 탈북을 겪다 보니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친한 이웃이, 남편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 자식까지 굶주리면 엄마 심정이 어떻겠냐. 그때 대량탈북이 시작됐다"며 "탈북하면서 온갖 일을 겪은 뒤의 얼굴들을 여러분들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북한에 계시는데 영상통화가 되는 세상에 북한은 편지도, 전화도 안 된다"며 탈북민들의 통일 열망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이미란씨는 "탈북민들은 탈북하다가 자식이 죽으면 사막에 묻고, 메콩강에 빠지면 그냥 두는 일들을 거쳐서들 온다"며 "낮에는 업신여길까 봐 말을 더 강하게 하지만 밤에 누우면 후회하고,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또 살기 위해 나섰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탈북 과정에 딸 둘이 북송돼 총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아들, 어린 손자와 영국으로 넘어와 정착했다.
그는 "맨체스터에 정착해 한국인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정을 쌓았다"며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있는 당신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하니까 포옹하며 함께 울어줬다"고 말했다.
패널로 나온 한국 출신의 신문경 리치먼드대 교수는 "남북 동포가 말이 달라서 오해와 갈등이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탈북민들이 문제가 생기면 순간 직선적이고 거친 말투가 나오는데, 이럴 때 북한에서 받은 교육과 치열하게 살아온 경험 때문이라고 이해해주면 평화에 일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이 세련되고 상냥하지만 속을 알 수 없으며 뒤에 가서는 다른 얘기를 한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이미선씨는 "영국에서 남북민 관계는 일자리를 주고 얻는 관계로 시작됐는데 이제는 대등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채은정 민주평통 유중아지역회의 공공외교위원장은 "남북을 떠나 같은 여성으로서 강한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건 주영한국대사는 개회사에서 "이번 행사와 같은 노력을 통해서 영국내 동포가 서로 이해하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장도순 회장은 "한국 출신도 소수자인 영국에서는 한국에서보다 남북민간 괴리감을 줄인 상태에서 소통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알렉산드라 피사-핀토씨도 참석해 남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끝까지 들었다. 그의 이부 오빠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고 아버지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였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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