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 주범이지만 탄소배출 통계에서는 사각지대"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6%를 차지하는 각국 군수산업이야말로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이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통계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각국 정부가 자국 군대 및 군수산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을 보고할 의무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발효된 파리협약에 따라 각국 정부는 지구 온도가 2℃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1997년 교토의정서 제정 때 미국 정부의 로비로 이미 군수 시설은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의무에서 자동 면제됐다.
이에 따라 탄소배출 억제를 위한 통계에 군대를 포함할지 여부는 각국 재량에 맡겨져 있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허사로 만들려 하고 있다.
책임감 있는 과학·기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의 단체인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 사무총장인 스튜어트 파킨슨 박사는 군대의 연료 사용량이 해마다 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등 군비를 많이 쓰는 나라들이 문제"라며 "다른 분야에서의 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군수 분야 탄소 배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강대국들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에 따라 다른 분야 및 다른 나라가 행동을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국방부는 자국 군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00만톤(t)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1천100만t에 이르는 것으로 SGR은 보고 있다.
이는 평균 크기의 자동차 600만 대가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에 맞먹는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회사는 군수항공업체인 BAE시스템스로 영국 군수산업 탄소배출 총량의 30%를 차지한다.
SGR과 영국 분쟁환경연구소(CEO)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유럽연합(EU) 회원국 군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은 총 2천480만t에 달하며, 이 가운데 프랑스가 대략 3분의 1을 차지했다.
미국 정부 역시 자국 군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5천600만t이라고 밝히지만 SGR은 그 양을 2억500만 톤으로 추정한다. 미 브라운대학의 '전쟁비용 프로젝트' 의 추정치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 단체는 2019년 미군을 가리켜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SGR은 또 미군의 탄소 배출량 추정치는 실제보다 적게 잡은 것으로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쟁 초기 4년 동안에만 1억4천100만t의 탄소가 배출됐다고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파킨슨 박사는 "다른 나라들도 자국 군대의 탄소 배출량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군용기는 '항공 분야', 군수업체는 '일반산업', 군사기지는 '공공건물'에 포함하기도 한다"며 "더 큰 문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정책 결정자나 전문 연구자들도 이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행사장 밖 시위자들은 영국 정부에 대해 군비 대신 기후변화 대응에 돈을 쓸 것을 요구했다.
평화 단체 PPU 활동가인 아냐 내닝 라마무르시 씨는 "영국 정부는 거의 70년 만의 최고치의 군비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기후 위기가 심각한 가운데 저들은 하나를 약속해 놓고 돌아서서는 딴짓을 한다"고 비난했다.
한편, 군사 부문에서의 숨겨진 온실가스 배출을 감시하겠다면서 최근 활동을 시작한 '밀리터리 에미션 갭'(Military Emission Gap)이라는 단체는 "군대가 실제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얼마인지 추적하고 분석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kj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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