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매매·전세 거래량 급감…급매·급전세도 안 팔려
대출 규제·금리 인상·종부세·대선 등 변수에 관망 심리 확산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주택 시장이 대출 규제와 기준 금리 인상, 종합부동산세 부과, 내년 대통령 선거 등 '쿼드러플(4중) 변수'로 사실상 '올스톱'된 분위기다.
정부의 강력한 '돈줄 옥죄기'가 시작된 가운데 이달 22일 종합부동산세 과세, 25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내년 3월 대선이라는 변수를 앞두고 매매는 물론 전세 시장까지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거래 부진이 계속해서 이어질 경우 조만간 집값이 하락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한다.
◇ 서울 아파트 매매, 전세 거래 동반 침체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은 매매, 전세 거래가 동반 부진에 빠진 모습이다.
매매의 경우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부담으로 시중에 나오는 매물도 많지 않지만, 매수자가 자취를 감추면서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조차 거래가 안 되고 있다.
14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공개된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 9월 2천697건으로 2019년 3월(2천282건)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다.
10월 거래 신고건수도 현재까지 1천910건에 그치고 있다. 10월 계약 물건의 주택거래 신고일이 이달 말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전월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물건이 많지 않아 시세가 하락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사정이 급한 사람은 수천만원 낮춰 내놓는데도 매수세가 붙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세 거래도 부진하다.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계절적 비수기이긴 하지만 학군 수요와 무관한 사람도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9월과 10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건수는 각각 1만1천여건 정도로 2017년 10월(1만1천22건) 이후 약 4년 만에 최소치다.
양천구 목동 중개업소에 따르면 신시가지 3단지 전용 64.98㎡의 신규 전세 시세는 8억원 선으로, 계약 만기 임박 등 사정이 급한 물건은 7억7천만원에도 나와 있지만 거래가 잘 안 된다.
거래가 급감하면서 가격도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14%로, 3주 연속 오름폭이 줄었다. 전셋값 상승률도 0.12%의 안정세를 보였다.
◇ 쿼드러플 변수에 숨죽인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매매, 전세 거래가 동반 침체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주택시장의 4중 변수로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 크다고 본다.
우선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이 직격탄을 날렸다.
이미 지난 7월부터 서울 등 규제지역내 시가 6억원 초과 대출에 대해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적용되는 등 시중 은행에서 돈 빌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3% 후반에서 최고 5%까지 치솟으면서 매수세가 위축되고 있다.
지난주 대출 규제 영향을 많이 받는 강북(0.04%), 동대문(0.05%), 관악(0.06%), 노원구(0.14%)의 상승폭은 서초(0.25%), 강남구(0.19%) 등 강남권보다 작았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서민아파트일수록 대출을 받아 사는 경우가 많은데 돈 빌리기가 어렵고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다 보니 지켜보겠다는 심리가 강하다"며 "한동안 집값 상승세에 놀란 무주택 2030 젊은층들의 매수가 많았지만 계속되는 정부 규제에 이들조차 관망세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전세 대출은 아직 DSR을 적용하지 않고 있으나 전세보증금 인상분에 대해서만 대출을 해주는 등 제약이 많다.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신고제 등 '임대차 3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이동수요가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다"며 "이런 가운데 전세대출도 제약을 받으면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25일 기준금리를 1%대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관망세는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기준금리 인상을 선반영한 측면이 있어 한은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려도 대출 금리를 마냥 높일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대출금리가 단기에 가파르게 상승한 데다 '기준금리 1% 시대'가 주는 상징성이 있어서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부세 변수도 거래 부진의 한 원인이다. 이달 22일 종부세 고지서가 발송될 예정인 가운데 추가로 매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매수자들은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종부세 과세기준일은 올해 6월 1일로, 부과 대상이 일찌감치 정해지면서 이미 팔 사람은 다 팔거나 증여 등으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역대급' 종부세에 놀란 집주인들이 일부 싼 매물을 내놓을 수 있어 일단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 치러지는 대선의 향배가 아직 불투명한 것도 관망세를 부추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일제히 주택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으나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정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윤 후보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완화, 1주택자 종부세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여서 규제 완화를 기대한 집주인들은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 '변곡점' 임박한 주택시장…하락 본격화 vs 버틸 것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변수가 많지만 일단 거래 부진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 다음 달 이후 본격적으로 집값이 하락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인터넷상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매물은 총 4만4천500여건으로, 한 달 전에 비해 9.3%가량 증가한 상태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 규제의 타격을 받은 강북지역은 아파트값이 보합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승폭이 줄고 있다"며 "다음 달 중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도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금리 인상 등 선진국의 유동성 축소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은 작지만 지역에 따라 상승세가 둔화하거나 일부 하락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면서 서울 재건축 등 규제 완화와 개발 공약이 제시되면 집값 상승폭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서울시가 연내에 압구정과 여의도 등의 지구단위계획과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전자상가 등의 개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집값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공급물량 감소도 집값 하락을 부정적으로 보는 배경의 한 요인이다.
내년과 2023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각각 2만491가구와 2만2천85가구로 올해(3만1천457가구)보다 1만가구가량 감소하고 작년(4만9천435가구)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박합수 전문위원은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규제 완화와 개발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변수"라며 "최근 집값이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상승폭이 둔화하고 있지만 내년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 신도시 등 토지보상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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