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국어 더빙의 힘…WSJ, 오겜 '글로벌 대박' 비결로 조명

입력 2021-11-14 13:07  

13개국어 더빙의 힘…WSJ, 오겜 '글로벌 대박' 비결로 조명
"31개국어 자막 있지만 더빙 시청자 더 많았다"
성우 르네상스? 넷플릭스, 34개국어 더빙시설 가동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캐릭터의 모든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 실감 나게 표현해서 영어를 살려야 해요. 입 모양을 최대한 맞추면서도 캐릭터 감정선을 전달해야 하죠."
'오징어 게임'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 역을 연기한 한국계 미국인 성우 그레그 천은 이번 작업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과거 비디오게임 더빙을 맡는 등 다수 경력을 보유한 천이지만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에 자연스러운 립싱크를 입히면서 세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천은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더빙 감독과 오디오 엔지니어와 함께 오징어 게임을 더빙했다.
꼼꼼한 작업으로 9회분을 녹음하는 데 총 45시간이 걸렸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데에는 더빙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집중 조명했다.
오징어 게임은 영어 외에도 프랑스어·포르투갈어·태국어 등 13개국어로 더빙됐고, 31개국어 자막이 제작됐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더빙으로 작품을 감상한 시청자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더빙을 통해 전 세계 흥행몰이로 이어진 넷플릭스 작품은 오징어 게임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스페인의 종이의 집, 프랑스의 뤼팽 등도 더빙을 등에 업고 흥행에 성공했다.
넷플릭스 더빙 디렉터인 캐서린 레타트는 "과거 영미권 시청자들은 더빙을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근데 지금 봐보라. 오징어 게임은 놀라운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넷플릭스에서 더빙 이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120% 증가했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데 더빙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넷플릭스는 자막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시청하는 키즈 프로그램 위주로 더빙을 제작했다. 이후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등으로 대상을 확장해나가며 사업을 키웠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뻗어나가면서 더빙 팀도 덩달아 커졌다.
현재 전 세계 170개가 넘는 더빙 스튜디오에서 34개국어에 달하는 더빙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이나 디즈니 플러스 등 경쟁사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도 더빙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영화 더빙 시장은 2027년 36억달러(약 4조 2천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더빙 작업이 보편화될수록 시청자의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비판도 나오기 마련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더빙이 부실하면 콘텐츠에 몰입하기 어렵다며 시청자들이 과거보다 고품질 더빙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오징어 게임을 향한 관심에도 칭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SNS 등에서 영어 더빙 버전이 실감이 나지 않다며 일부 이용자들이 지적하기도 했다.
더빙 콘텐츠를 연구해온 소피아 몸페안 스페인 무르시아대학교 부교수는 일반적으로 더빙에 익숙지 않은 시청자가 부정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특히 더빙에 익숙지 않은 영미권 시청자들이 립싱크에 민감해 몰입이 쉽게 깨지면서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몸페안 부교수는 "모든 문화적인 요소가 더빙 버전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의 레타트 디렉터는 "더빙은 단순히 번역이 아니다"라며 "현지인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려면 말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더빙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뉘앙스도 맞춰야 한다"고 더빙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전했다.
어색한 더빙을 지적하는 따가운 시선이 있지만 넷플릭스는 개선 여지가 크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레타트 디렉터는 "더빙은 요리와 같다. 하나의 기술이자 기교"라며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스타트업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더빙 기술도 개발 중인 상황이지만 넷플릭스 측은 원작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실제 성우와 작업할 방침이다.
레타트 디렉터는 "더빙에 진실성을 더하기 위해 현지 인력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kit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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