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른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세계 주요 37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4.2%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4위인 홍콩(92.0%), 영국(89.4%), 미국(79.2%) 등에 한참 앞서는 압도적인 1위이다. 가계 부채 규모가 GDP보다 많은 경우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증가 속도 역시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주택 가격 상승과 함께 글로벌 가계 부채가 올해 상반기에만 1조5천억 달러 늘었다"며 "조사 대상국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서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높아졌는데 특히 한국, 러시아 등에서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가계는 국가 경제의 기초이지만 국가나 기업 등 다른 경제 부문과 비교해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가계가 빚더미 위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향후 경기 변동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결국 국가 경제 전체가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
가계 빚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주택 가격 급등이다. 가계 부채는 통상 주택 가격 상승과 동반해 늘어난다고 한다. 최근 보험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가계 부채도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사례를 볼 때 주택 가격 조정 없이 가계 부채가 조정된 경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주택 가격이 안정돼야 가계 부채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값이 2~3배 폭등한 아파트 단지가 부지기수이다. 투기 수요에 더해 무주택자와 젊은 층이 '영끌' 대열에 동참하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계 빚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억제에 나서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최근 폭등은 아니지만,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가계 부채 관리와 실수요 지원이라는 두 개의 상충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집값 안정이나 가계 부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의 호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벼락 거지'로 전락한 서민들에게 정교하면서도 담대한 정책으로 집값 안정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주는 것을 최우선일 것이다.
통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가계 부채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위험 요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돈이 풀렸는데 이 돈이 주택과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풀린 돈을 단계적으로 회수하고 시장의 거품을 제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어떻게 보면 반강제적으로 자산 시장으로 내몰린 경제적 취약층들이 더 큰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산·소득 불평등은 프랑스 혁명 때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양극화는 저출산·고령화를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결국 전 사회구성원을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가계 부채는 단순히 개개인의 삶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전성과 지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IIF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 비율이나 증가 속도 역시 최상위권이었으나 정부 부문 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47.1%로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그나마 나은 재정 여력을 활용해 경기 변동과 정책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데에도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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