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와 서양인 기록 분석…"먹이·은신처 있으면 도시 주변 서식 가능"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구한말까지 한양 도성 안팎에 아무르 범(조선표범)이 출몰했으며, 이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아무르 표범을 보호하고 공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런던동물학회'(ZSL)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한양 주변의 표범 출몰과 관련한 다양한 사료를 연구한 결과를 개방형 정보열람 학술지 '보전 과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Conservation Sciences)에 발표했다.
ZSL과 UCL에 따르면 연구진은 승정원일기 등에 적힌 범 관련 기록과 이 시기 한양을 여행한 릴리아스 언더우드 여사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을 검토했다.
연구진은 구한말 한양 성곽 내에 표범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떠돌이 개가 돌아다니고, 버려진 집과 함께 외곽의 울창한 숲 등이 은신처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표범이 오지 산촌은 물론 한양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먹이와 낮에 숨을 곳이 있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한 인간이 지배하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표범이 지금까지 여겨지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인간이 만든 도시 환경에서 살고, 다양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표범은 적대적 도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대형 육식동물 중 하나이지만, 겨울에는 영하 20도, 여름에는 30도를 웃돌던 한양 주변에서 출몰했다는 것은 표범의 대단한 적응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서울대 수의대학 연구진도 참여했으며,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양 주변의 큰 고양잇과 동물 출몰을 기록한 기존 연구가 바탕이 됐다.
연구진은 격동기였던 19세기 말의 정치와 사회, 경제적 상황이 한양 주변에서 아무르 표범을 사라지게 했을 수 있다면서, 초기 서양인들이 사냥꾼을 고용해 표범 사냥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박해 사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했다.
논문 제1 저자인 UCL 지리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조슈아 파월은 "과거 생태계는 보전 과학자들이 멸종위기종의 옛 분포와 개체 등에 관한 지식의 빈틈을 메워주는 가치 있는 도구"라면서 "한양에서 아무르 표범의 출몰과 절멸은 완벽한 사례"라고 했다.
한국범보전기금(KTLCF) 대표인 서울대 수의대의 이항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시공간의 맥락에서 인간과 도시화된 환경 주변의 대형 고양잇과 동물 간 공존 사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19세기 말에 초점을 맞춘 이번 연구 외에 조선왕조 500여년에 걸쳐 산발적 출몰 기록도 있어 특정한 조건이 맞으면 대형 고양잇과 동물과 인간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ZSL 동물연구소의 사라 두런트 소장은 "이번 연구는 인간이 표범과 가장 인위적인 환경에서도 함께 산 긴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면서 "표범은 적응력이 고도로 뛰어난 종이어서 소수이기는 해도 같은 공간을 나누는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고려할 때 도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범이 충분한 먹이에 접근할 수 있고 낮에 몸을 숨길 빽빽한 초목이 있는 곳이라면 도시에서 생존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는 현재 러시아와 중국 접경의 좁은 지역에 서식하며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돼 있는 아무르 표범의 보호를 강화하고 공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지적됐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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