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 인권 등 타협불가 영역과 무역 등 협력가능 영역 구분 성과
대만 관련 마지노선 상호 확인도 상황 관리에 도움될듯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16일(미국시간 15일) 첫 화상 정상회담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던 양국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생길지 주목된다.
'21세기 신 냉전'으로까지 불리는 양국 간의 전략 경쟁은 계속될 것이고, 인권과 주권이 결부된 현안에서 양국은 계속 삐걱대겠지만 협력 가능한 영역을 찾아 협력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일치를 추구하되 서로 불일치하는 영역은 그대로 두는 것)의 실용적 접근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추진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영상으로 진행된 회담에서 미중관계를 경쟁으로 규정하는 미국의 인식과 경쟁에 반대하며 상호 공존·공생하자는 중국의 인식 사이에 간극은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방 매체발로 "돌파구는 없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이 충돌을 막기 위한 미중 관계의 '가드레일'을 강조했는데, 그 기본 전제는 미중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었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헤게모니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과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확인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 다음날인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를 찾은 자리에서 미국에 맞서 돈을 거는 건 좋은 내기가 아니라며 동맹 규합을 통한 중국 견제를 이어갈 뜻을 시사한 것도 기존 대 중국 인식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상당 시간을 할애해 양국의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상생을 강조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경쟁'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 이후 미중 간의 치열한 전략경쟁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게 중론이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17일 "국익이 직접 충돌하는 문제나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있는 현안에서 여전히 양측 입장 차이가 나타났다"며 "물론 양국이 관리는 하겠지만 여전한 갈등 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양국간 타협 불가능한 이슈와 협력 가능한 이슈를 구분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권 문제와 대만, 홍콩, 남중국해, 신장(新疆) 문제 등에서 양국은 상호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이번 회담에서 확인됐지만 경제·무역, 인적 교류와 문화 교류 등 양국 관계 영역과 기후변화 및 핵 비확산 등 국제 현안에서 협력할 여지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회담후 바이든 대통령이 "좋은 만남이었다. 후속 조치를 할 것이 많다. 4개 그룹을 마련해 여러 이슈에 대해 협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양국 경제 분야 사령탑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류허(劉鶴) 부총리가 정상회담에 배석했다는 점은 양국 무역 협상 재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 부분이었다. 양국 간에 관세 인하 등을 둘러싼 협상이 조만간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이 중국 언론인들에게 1년짜리 복수비자를 발급하기로 했으며, 중국도 미국의 해당 정책이 시행되면 미국 언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기로 약속했다는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의 보도가 정상회담 직후 나온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외교 영역에서 작년 7월 상호 폐쇄한 텍사스주 휴스턴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소재 영사관을 재개관하는 문제 등이 이번 회담 후속 조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한권 교수는 "미중 정상회담 후 언론인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취해졌던 조치와 그로 인한 갈등에 대해서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이번 회담에서 기후변화 협력 이야기가 나왔고 이란 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를 미중이 지역 현안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핵 비확산 부분에서 향후 미중의 논의와 협력 가능성이 나타났다고 생각된다"며 "향후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도 협력의 공간이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두 정상이 최대 쟁점 현안인 대만 문제와 관련해 강하게 맞선 것처럼 비쳤지만 충돌 방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마지노선을 확인한 것은 상황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의 발표 내용에 약간 온도 차가 있긴 하지만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 고수와 '대만 독립 비(非)지지'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대만 문제에 대한 현상 변경과 평화 및 안정 훼손 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시 주석은 "대만 독립·분열 세력이 도발하고 심지어 레드라인을 돌파하면 우리는 부득불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로 입장은 엇갈렸지만 대만 독립 지지 등을 둘러싼 상대의 의심을 불식하고, 레드라인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한 것은 오판에 따른 충돌을 막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온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체제 전환을 추구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중국의 중대한 우려 중 일부를 덜어준 측면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미·중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양 정상이 충돌은 피하자는데 인식을 같이 했고 경쟁하되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는 기조를 보였는데, 미중 양국관계가 바닥을 치고 개선 방향으로 나간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제3차 '역사 결의' 채택으로 장기집권의 이론적 토대를 다진 시 주석이 내년 하반기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짓기 앞서 당분간 대외 관계의 핵심인 미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이번 회담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도 중국 내 관측통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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