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베를린은 현대적이면서 과거를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 하는 도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독일 독자들과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처음 방문한 소설가 편혜영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도시가 준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숙소 인근 독일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를 오갔던 국경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에는 여전히 설명을 듣는 이가 가득했고 베를린 장벽을 따라서는 사진 전시가 열리는 풍경을 되짚었다.
편 작가가 2016년 출간한 네번째 장편소설 '홀'은 지난 2019년 4월 btb출판사에서 '리스(Riss·균열)'라는 제목하에 독일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은 2020년 독일에서 출간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아랍의 여성작가의 작품 중 독자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인기작에 수여되는 리베라투어상(Liberatur preis) 최종 후보 12개 작품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아니타 드야파리 심사위원은 "상상할 수 없는 심연이 열리고, 아무것도 겉보기와 같지 않다. 최면에 걸린 것 같다"라면서 이 작품을 추천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소설은 2018년 7월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한 해 최고의 호러·서스펜스·미스테리작을 선정하는 미국 셜리 잭슨 상(Shirley Jackson Awards) 장편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묻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주인공 오기를 인간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인종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나와 다른 점과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홀의 주인공 대학교수 오기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를 잃고 스스로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된다. 그를 돌봐줄 사람은 아내를 인생의 전부로 여겼던 장모뿐이다.
편 작가는 "한 외국 독자가 장모와 사위,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전세계 공통이라고 농담을 건넸었는데 가족 같으면서도 남 같기도 한 껄끄러운 감정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2일 베를린에서 독자들과 만나 "홀은 오기라는 인물의 실패담이자 성장담"이라며 "자기가 인생에서 가졌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허망했던 것인지, 아내에게 했던 말이 얼마나 가식적이었던 것인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빈 구멍 같은 것인지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라고 해설했다.
그는 "이야기의 구조가 다 나와 있어도 쓰면서 오기가 어떤 순간에 자신의 가식을 알게 될까. 자신을 위해 처음 눈물을 흘릴까 생각하며 재밌을 수 있었다"면서 "어떤 이야기는 쓰는 동안 작가로서 새롭게 발견하고 알게 되는데 나에겐 홀이라는 소설이 그랬다"고 말했다.
편 작가는 결혼생활의 실패가 오기만의 책임이냐는 질문에는 "소설에서 발화되는 것은 오기의 목소리뿐이고, 관계에서 균열을 만드는 것은 모두 아내의 책임으로 돌리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내와 장모는 소설에서 이름도 없는데 표면적으로 어떤 여성도 제 목소리를 못 냈기 때문에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가 오히려 담길 수 있는 소설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와 괴팅겐을 거쳐 베를린에서까지 세 차례 홀 낭독회를 열고, 독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다.
2000년 등단해 소설집 6권과 장편소설 5권을 출간한 그는 다음 작품과 관련해서는 "내년에 장편 초고를 완성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간단히 말하면 실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홀이라는 소설처럼 서스펜스가 강하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소설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쓰기 전에는 분명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낭독회에 참가한 율리아 뵈믈러씨는 "한국 드라마 등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야심 가득 차 성공을 지향하는 사회인지 느껴지는데 문학은 그 사회의 이면을 부각해 실제 사람들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었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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