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외교부 "사법시스템 작동 중"…인권단체 "계략 불과, 조사 계속해야"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국제형사재판소(ICC)가 6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반인륜 범죄로 규정한 필리핀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조사를 유예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필리핀 정부의 '계략'이라며 반발했다.
20일 로이터 통신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문서를 인용, 카림 칸 ICC 검사장이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조사를 유예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이 인용한 문서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지난 10일 ICC에 조사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각국 정부는 ICC가 조사하려는 행위에 대해 같은 조사 및 처벌 절차를 진행 중일 경우, ICC에 조사 연기를 신청할 수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칸 검사장은 "검찰은 필리핀 측의 조사 연기 요청의 범위와 영향을 평가할 동안 잠정적으로 조사 활동을 유예했다"면서 검찰이 필리핀 당국에 추가 정보 제공을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간 필리핀스타도 필리핀 정부가 ICC에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조사를 연기해줄 것을 공식으로 요청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ICC가 소재한 네덜란드 주재 필리핀 대사인 에두아르도 말라야는 ICC에 보낸 서한에서 필리핀 내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정부도 자체적으로 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만큼, ICC는 조사를 연기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말라야 대사는 그러면서 지난달 필리핀 법무부가 마약과의 전쟁과 관련해 진행한 52건의 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한 사실 등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마약과의 전쟁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는 필리핀 변호사 단체 '국민변호사전국연합'(NUPL)은 ICC가 조사를 계속할 것을 촉구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NUPL은 성명에서 "ICC가 두테르테 정부가 하는 주장에 흔들리지 않기를 요청한다"면서 "이 주장은 실제 현장의 상황과 너무나 반대되는 것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아시아 책임자인 브래드 애덤도 필리핀 정부의 조사 유예 요청을 '계략'이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대대적인 마약 범죄 소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6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인권단체 등에서 인권유린 범죄라는 지적이 계속된 가운데, 지난 9월 ICC는 이를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정식 조사에 나서겠다는 ICC 검사의 요청을 승인했다.
필리핀 정부는 자주권과 관할권을 거론하면서 "필리핀에서 일어난 범죄는 필리핀 당국만이 조사할 수 있다"면서 ICC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한편으로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ICC의 개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담긴 조처라는 분석이 나왔다.
재임 기간 마약과의 전쟁을 밀어붙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ICC의 조사 결정 이후,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면서도 ICC의 조사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헌법에 의해 연임 도전을 할 수 없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내년 5월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임기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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