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인플레 0%대·코로나 급감…세계가 놀란 '일본 불가사의'

입력 2021-11-26 05:30  

[이슈 In] 인플레 0%대·코로나 급감…세계가 놀란 '일본 불가사의'
물가 급등·코로나19 재확산 심각한 한국·미국·유럽과는 딴판
'델타 변이 자멸설' 제기…"저인플레는 일본만의 독특한 현상"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한국과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이 코로나19 재확산과 물가 급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유독 일본에서만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하루 50명대까지 급감하고 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이 유지되면서 그 배경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일본만의 특이한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를 두고 다양한 가설을 제기하면서 일본의 사례가 세계적인 난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 전 세계가 '물가 쇼크'인데 일본은 물가지수 0.1% 머물러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들어가면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공급망 붕괴와 탄소중립 정책,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동월보다 6.2% 상승해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CPI는 4.1%였다. 한국도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해 9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반면 일본의 10월 CPI는 0.1%에 불과했고,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빼면 -0.7%였다.
일본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경제의 대외 의존도도 높은 편이어서 이런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원유와 원자재, 반도체 등을 수입하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의 대응 방식이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많은 미국의 대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상품 가격에 반영해 수익성을 올리고 있지만 일본의 최대 유통기업 이온은 올 연말까지 밀가루와 마요네즈, 스파게티 등 주요 자체브랜드(PB) 상품의 가격을 동결하기로 했다고 WSJ은 전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상품 소비자가에 반영하지 않고 최대한 생산자가 흡수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온 대변인은 WSJ에 "일본의 소비자들은 삶을 지키기 위해 한층 방어적으로 되고 있으며 생활필수품을 사는 데에 너무 많은 돈을 쓰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생활용품 판매회사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료힌케이카쿠(良品計?)는 7월부터 11월에 걸쳐 약 190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다.
료힌케이카쿠 측은 이같은 상품가격 인하의 영향으로 지난 9∼10월 직물 카테고리 상품의 매출이 늘었다고 밝혔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다른 나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일본이 겪게 될 위험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WSJ은 그러나 일본의 낮은 인플레는 생산과 임금의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낮은 인플레와 저금리, 저성장이 반복되는 현상이 일본만의 독특한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할 만한 처방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우치 다카히데(木內登英)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좀처럼 가격을 바꾸지 않는 일본의 안정적 경영방식은 단기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회복과 바람직한 산업구조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한·미·유럽 코로나 재확산 비상…일본은 하루 50명대로 '뚝'
일본은 코로나 확진자 발생 추이에서도 세계적인 추세와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 재확산이 심각한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 네덜란드, 독일 등이 이달 22일부터 전국적인 봉쇄 또는 부분 봉쇄에 들어갔다.
프랑스와 덴마크, 이탈리아 등도 재확산세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새로운 봉쇄와 규제 강화 카드를 준비 중이다.
미국도 10월 말 이후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가 9만3천 명을 넘어서는 등 재확산이 심각한 상황이고, 한국도 24일 0시 기준으로 하루 확진자가 처음으로 4천 명을 넘어서면서 일상 회복 정책이 기로에 섰다.
반면 일본은 24일 기준 전국적으로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가 75명에 불과했고, 수도권인 도쿄도의 확진자 수는 고작 5명이었다. 22일에는 전국 확진자 수가 50명까지 내려갔지만 이후 소폭 증가했다.

일본도 11월부터 본격적인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이나 유럽, 미국 등과 달리 코로나 재확산 없이 안정적인 추세가 유지되는 것이다.
지난 8월 하루 3만명까지 늘어났던 일본의 하루 코로나 확진자 수는 9월 초 2만20명에서 10월 초에는 1천444명으로 줄더니 11월 들어서는 주중 100∼200명대, 주말은 100명 미만을 기록 중이다.
세계적인 추세와 따로 가는 일본의 코로나 환자 급감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백신 효과'와 검사 건수 감소가 이유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일본보다 백신 접종 완료율이 높은 한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재확산세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5차 유행 당시 하루 16만건까지 증가했던 일본의 PCR 검사 건수는 확진자가 크게 준 10∼11월에는 주중 3만∼5만건, 주말은 1만∼2만건으로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확진율을 보면 실제로 환자가 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쿄의 코로나 양성 확진율은 8월엔 20%대까지 치솟았지만 이달 21일엔 0.3%로 급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일본에서는 항체 형성률과 델타 변이 예방 효과가 뛰어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으로만 접종이 이뤄진 것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본 내에서는 '델타 바이러스 자멸설'도 등장했다.
델타 변이가 단기간에 급속히 확산하면서 변이 바이러스 내 오류가 일어났고, 복제 불능 상태가 돼 사멸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론이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와 니가타대 연구팀은 지난달 말 열린 일본 유전학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자멸설'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노우에 이투로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교수는 재팬타임스에 "일본 내 델타 변이는 전염성이 높아 다른 변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변이가 계속되면서 결국 자가 복제가 불가능해졌다"며 "신규 확진 사례가 증가하지 않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 이 같은 변이가 자연 소멸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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