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 협력관계 거의 없고 '핍박의 역사' 정서적 공감대
정밀 레이저기술 세계 최강…대만 TSMC와 시너지 기대
(베를린=연합뉴스) 이 율 특파원 = 인구 280만에 불과한 유럽 소국 리투아니아가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과 정면으로 맞서며 '친대만 노선' 강화하고 있다.
나라의 규모로만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구도다.
대만은 지난 18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외교공관인 대만대표처를 공식개관했다. 대만대표처가 설치된 곳은 리투아니아가 유럽국가 중 유일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중국은 대만이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리투아니아가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사안에서 대놓고 대만 편에 선 것이다.
다른 유럽국가나 미국에서는 대만 대표부를 타이베이 대표처 등으로 우회해 호칭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지난 7월 대만과 대만대표처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강력한 경고와 압박에도 리투아니아는 이를 고수했다.
이에 중국은 리투아니아에서 영사업무를 중단하고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공관 명칭을 대사관에서 대표처로 격하하겠다고 통보했다.
중국의 보복성 강공에도 리투아니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29일에는 아예 리투아니아는 이웃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만났다.
이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자고 뜻을 모았다.
앞서 5월에는 중국 신장 위구르족 정책을 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리투아니아 의회를 통과했다. 같은 달 중국과 중·동 유럽 국가 간의 17:1 경제협력체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9월에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의 스마트폰에 검열기능이 탑재돼 있다며 중국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권고했다.
유엔에선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낸 곳도 리투아니아다.
이런 과감한 행보의 이유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과 다르게 중국과 경제적 측면에서 관계가 거의 없는 반면, 대만과는 협력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리투아니아의 한 고위공무원은 폴리티코에 "우리의 대중국 투자액(약 540억원)에 비해 중국이 우리에게 투자한 규모(약 40억원)는 10분의 1에 그친다"라고 설명했다.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중국과 마찰을 빚어도 자국 경제에 파급하는 악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또 안보를 이유로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300㎞ 떨어진 클라이페다 심해항에 대한 중국 국영기업의 투자승인도 미루고 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우리 국가안보에 민감한 기반시설과 다른 부문에 대해 투자를 하는데 관심을 보였지만, 그런 전략적 투자에 대해 우리는 국가 차원의 검사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대만과는 '핍박의 역사'를 정서적으로 공유하며 경제적으로도 협력의 여지가 많다.
리투아니아는 구소련에 핍박받았던 역사가 있다.
1990년 3월 구소련에서 처음 독립을 선언한 뒤 경제적 제재와 함께 무력으로 진압당한 아픔이 있다. 이후 1992년 소련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1993년 소련군을 모두 철수했다.
정밀 레이저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인 리투아니아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대만과 경제협력의 여지도 크다.
차세대 반도체 제조 설비에 필수적인 레이저 초정밀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언론은 이미 25억∼30억 유로(약 3조4천억∼4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정서적, 기술적 공감대 속에서 대만은 유럽내 반도체 생산기지로 리투아니아를 선정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투아니아의 이런 독자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알렉산드로 쿠친스카-초닉 중유럽연구소 발트 3국 담당 분석가는 독일 이픈미디어에 "리투아니아의 자유민주주의 정부는 경제보다는 가치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고 안보를 더 중요시하는 정치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안드레이 푸크스츠토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 정책학연구소 소속 정치학자는 "리투아니아는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가치 중심의 정치체계'를 선택했고 고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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