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팡테옹 안치 첫 흑인…마크롱 "인류 수호한 여성"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맞서 스파이로 활약한 흑인 여가수가 사후 46년 만에 프랑스 위인 묘지인 팡테옹에 안장됐다.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도심 팡테옹에서는 30일(현지시간) 재즈 가수이자 저항군(레지스탕스) 조세핀 베이커(1906∼1975) 안장식이 열렸다.
미국 출신 프랑스 국적자였던 베이커는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팡테옹에 안장돼 빅토르 위고, 볼테르, 에밀 졸라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 80명과 나란히 잠들게 됐다.
여성으로서는 마리 퀴리, 시몬 베이 등에 이어 6번째다.
이날 안장식에서는 앞서 모나코에 묻힌 베이커의 유해를 그대로 두고 대신 흙 네 줌을 담은 관을 안치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관에 담긴 흙은 베이커의 고향 땅인 미국 세인트루이스, 모나코 묘지, 파리, 밀랑드 등 그의 발자취가 담긴 곳에서 가져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안장식에서 베이커가 "영웅이자 투사, 무용가, 가수였다"면서 "흑인 편에 선 흑인이자 무엇보다 인류를 수호한 여성"이라고 추모했다. 이날 안장식에서는 베이커의 대표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레드카펫 위로 관이 운구됐으며 시민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그의 넋을 기렸다.
미국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베이커는 타고난 가창력으로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명성을 얻었고, 19살 때인 1925년 바다 건너 파리에 입성했다.
베이커는 단숨에 유럽 무대를 휘어잡으며 '재즈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그의 이름을 딴 화장품이 출시되고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하면서 '검은 비너스'로도 불렸다.
1937년 프랑스 국적을 얻은 베이커는 미국과 달리 인종 차별 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프랑스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 저항군에 가담했고 해외 공연을 다니면서 스파이로 활동했다.
맨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잉크로 악보 위에 적은 지령을 아군에 전달했는가 하면 나치 명단을 속옷에 숨겨오기도 했다.
밀랑드 지역에서는 베이커가 빌려둔 성이 무기를 숨겨놓거나 나치에 쫓기는 유대인 은신처로 쓰였다.
종전 후에는 인종 차별에 맞서는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세계 각국에서 입양한 자녀 12명을 두기도 했다.
하지만 베이커는 자금난에 시달리던 끝에 1969년 밀랑드 성을 처분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1975년 4월 9일 공연을 마치고 파리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흘 뒤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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