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평등담당 집행위원, 내부 직원에 '차별적 용어 배제' 권고
교황청 "정당한 차이 존중해야…기독교 뿌리 부정해선 안돼"
(바티칸=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내부 직원들 사이의 종교적 차별을 배제해야 한다며 '크리스마스' 등의 용어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하자 교황청이 공개 반발하는 등 논란이 됐다.
1일(현지시간) 가톨릭 전문매체 '가톨릭 뉴스통신'(CNA) 등에 따르면 헬레나 달리 평등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10월 26일 32쪽 분량의 '포용적 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성별과 성적 정체성·인종·문화·종교 등에 기반해 특정인을 낙인찍거나 차별하지 않도록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취지다.
가이드라인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 등이 구체적으로 나열됐다.
'체어맨'(Chairman) 대신 '체어'(Chair), '레이디스 앤 젠틀맨'(ladies and gentlemen) 대신 '컬리그'(colleagues) 사용을 권고하는 식이다.
종교 부문에서는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용어가 사용 금지 목록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모든 EU 직원이 기독교 휴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며 아울러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날 이를 기념하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직원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holiday)라는 용어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은 또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면서 세례명 대신 성(姓)을 사용할 것을 권했다.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교황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교황청 서열 2위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국무원장)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별 금지는 옳은 일이라면서도 EU 집행위 가이드라인이 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당한 차이를 존중하기는커녕 다양성을 해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롤린 추기경은 아울러 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그 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인 마른 르펜도 "테크노크라트(전문 지식을 갖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들은 우리 정체성과 뿌리와 전통의 적"이라고 비꼬았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논란이 일자 달리 집행위원은 지난달 30일 보완이 필요하다며 가이드라인을 철회했다.
그는 "공개된 가이드라인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모든 위원회의 기준을 충족하지도 않는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을 취소하고 추가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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