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직접 개입 속 극적 반전 없으면 파산 가능성
"3천억 상환 어렵다" 선언…6일 또 900억대 달러채 이자 상환 데드라인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2위 부동산 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유동성 위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헝다가 자금 부족으로 채무를 못 갚을 수 있다면서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예고하고 나섰고, 중국 당국도 헝다 사건을 '개별 사건'으로 간주하면서 헝다의 디폴트 이후 시장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 22조원대 달러채 연쇄디폴트 위기 급고조…위기 폭발 직전
헝다는 금요일인 3일 심야에 홍콩 증권거래소에 올린 '올빼미 공시'를 통해 기습적으로 디폴트 위기 상황을 공개했다.
헝다는 2억6천만 달러(약 3천75억원)의 채권자로부터 채무 보증 의무를 이행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측은 관련 채무가 무엇인지, 상환 데드라인이 언제까지인지 등 구체적인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발표된 내용에 비춰보면 이 채무는 헝다 관계사인 홍콩의 쥐샹(鉅祥·Jumbo Fortune)이 발행한 달러 채권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쥐샹은 지난 10월 만기가 도래한 2억6천만 달러 규모 채권을 상환하지 못했다. 헝다는 이 채권에 보증을 서 채권자들이 헝다에 대신 채무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10월 당시 헝다가 해당 채권자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상환 기간을 내년 1월까지 3개월 연장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었다.
헝다가 이번 공시를 통해 언급한 채무가 이것이 맞는다면 해당 채권자들이 즉시 채무 상환 요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만일 헝다가 실제로 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공식 디폴트가 선언되고 이는 다시 대규모 연쇄 디폴트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공식 디폴트 선언이 나면 만기가 남은 나머지 전체 달러 채권자들이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만기가 남은 헝다의 달러 채권 규모는 192억3천600만 달러(약 22조7천억원)에 달한다.
달러채 연쇄 디폴트 사태가 시작되면 헝다는 더는 스스로 유동성 위기를 통제할 수 없게 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간 겨우 틀어막아 왔던 부채 위기가 일순간에 폭발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달러 채권 문제는 전체 헝다 사태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헝다 유동성 위기 과정에서 달러 채권 문제가 특히 부각되는 것은 그나마 이 문제에 관한 동향이 가장 투명하게 시장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을 기준으로 헝다의 총부채는 1조9천665억 위안(약 365조원)에 달한다. 헝다의 부채는 중국 내 은행 등 금융권, 위안화 채권, 그림자 금융 상품, 달러 채권 등에 걸쳐 있다. 이 밖에도 헝다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형 시공사들과 자재 공급업체, 건설 현장의 농민공에 이르기까지 헝다에 돈을 떼인 이들이 허다하다.
◇ 중국 당국, 헝다 위기 직접통제 나서…극적 반전 없으면 파산으로
헝다가 디폴트 직전 위기 상황에 내몰리자 중국 당국도 간밤 긴박하게 움직였다.
헝다 사태의 일차적 관리 책임을 맡은 광둥성 정부는 전날 쉬자인(許家印) 회장을 긴급 소환해 면담하고 '헝다의 요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실무팀을 헝다에 상주시키며 직접적인 위기 관리에 나섰다.
지방정부가 직접 상황 통제에 나선 가운데 헝다가 당국의 지원 속에서 대형 자산 매각에 성공하면서 디폴트를 극적으로 모면할 가능성도 아직은 존재한다.
당초 헝다는 자회사인 헝다물업 지분을 매각해 3조원대 현금을 확보해 유동성 위기를 넘기려 했지만, 매각 성사 직전에 거래가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부동산 억제 정책의 여파로 헝다의 사업 정상화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부채 규모가 커 헝다가 결국에는 디폴트 상황으로 떠밀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여전히 많다.
당장 헝다는 6일까지 또 총 8천249만 달러(약 976억원)의 달러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하면 공식 디폴트를 내게 된다. 헝다 계열사인 징청(景程·Scenery Journey)은 당초 채권 이자 지급일인 지난달 6일까지 2건의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는데 30일간의 유예 기간이 이달 6일 끝난다.
또 이달 28일에는 2억4천300만 달러(약 2천875억원)의 달러채 이자를, 내년 1월 중에는 달러 채권 총 7건의 이자 4억1천500만 달러(약 4천909억원)를 각각 갚아야 한다.
헝다는 이런 가운데 거의 2조 위안에 달하는 전체 부채 중 내년 6월까지 2천400억 위안(약 44조6천억원)을 갚아야 한다.
부동산 개발 사업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헝다가 360조원대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장기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구조다.
따라서 헝다가 조만간 공식 디폴트에 이어 파산 절차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디폴트가 공식화되면 자산을 강제 환수하려는 채권인의 신청으로 법정 파산 절차가 시작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 파산은 남은 자산을 모두 처분해 채권자에게 나눠준 뒤 해당 법인을 없애는 파산 청산 절차와 채무조정 및 추가 투자를 통한 파산 구조조정으로 크게 나뉘며, 회사의 존속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청산 대신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된다.
업계에서는 파산을 통해 세 개 회사로 쪼개진 하이난항공(HNA)그룹의 파산 구조조정이 헝다에 선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하기도 했다.
◇ '개별 사건' 강조하는 중국…세계 경제 파급 우려도
중국 당국도 헝다의 경착륙에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금융당국인 인민은행,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미리 대비를 한 듯 전날 밤 일제히 발표한 성명에서 헝다 사태를 '개별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자국의 경제 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전날 심야에 발표한 성명에서 "헝다 위기의 주요 원인은 스스로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확장을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며 "국제 달러채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비교적 성숙하고 관련 문제를 처리할 명확한 법적 규정과 절차도 존재한다"며 "단기적인 부동산 기업의 위험이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정상적 융자 기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감독관리위원회도 헝다의 전체 채무 중 금융권 부채가 3분의 1가량에 그치고 구조적으로도 분산되어 있다면서 금융권의 정상적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다분히 헝다 파산이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이다.
중국 최고위층들은 그간 헝다 사태가 자국 경제 구조를 건강한 방향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류허(劉鶴) 부총리도 지난달 20일 "비록 부동산 시장에서 개별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위험은 전체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며 "부동산 시장의 건강한 발전이라는 큰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헝다 사태로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축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중국 경제의 하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부동산 산업의 위축은 철강, 시멘트, 엔지니어링 같은 직접 연관 산업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수 많은 산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의 주택시장 침체는 중국의 성장률을 둔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아시아 연구 책임자인 루이스 퀴즈는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심각한 부동산 침체가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 4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0%까지 떨어지고 이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0.7%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h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