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고 잔금 앞둔 매도자 "잔금일 좀 미뤄달라" 연기 요구 쇄도
법은 통과됐는데 시행일 몰라 '답답'…매수자·세입자 간 갈등도
고가주택 기준 '들쭉날쭉' 복잡…양도세-대출-종부세 모두 제각각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주택시장에는 혼란이 커지고 있다.
비과세 기준 상향 여부를 놓고 수개월째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국회가 갑자기 시행을 결정한 데다 해당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과 달리 구체적인 시행일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시장에는 12억원 상향 논의 전 집을 팔고 잔금 납부일이 닥친 매도자들의 잔금 연기 요구가 쇄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매수인과 중간에 낀 세입자 사이의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 잔금 연기 요구 속출…"법은 통과됐는데 시행일 몰라" 혼선
1주택자인 A씨는 지난 10월 10년 보유한 용산의 보유주택을 매도하고 이달 8일로 잔금 날짜를 잡았는데 갑자기 양도세 비과세 기준선이 9억원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양도세가 당초 1억9천만원에서 1억4천940여만원으로 4천만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어떻게든 잔금일을 연기해야 하는데 매수인이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
A씨는 "매수인에게 별도 사례를 하겠다고 잔금일을 미뤄달라고 사정하는 중인데 시행일까지 안 나오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매수인이 마치 탈세를 돕는 것처럼 탐탁지 않게 여겨서 설득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가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을 갑작스럽게 결정하면서 고가주택이 많은 서울 주택시장이 혼란이 빠졌다.
이미 집을 팔아놓고 잔금을 기다리는 매도인을 중심으로 매수인에게 잔금 지급일을 미뤄달라는 연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도자 입장에선 며칠 차이로 아깝게 양도세가 수천만원 이상 왔다 갔다 하는데 애가 닳을 수밖에 없다"며 "잔금 날짜가 임박한 매도인들이 일정을 늦춰 달라고 통사정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새 소득세법의 시행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세법이 2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국무회의 상정일과 공포일은 아직 미정이다.
통상 법이 정부로 이송된 후 공포까지 2∼3주 정도 소요돼 이달 20∼31일 사이에 시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국무회의 의결 즉시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동구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잔금 날짜를 미루려고 해도 시행일이 언제일지 몰라서 더 답답해한다"며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언제쯤 법이 시행되는지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잔금 지급일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생기고 있다.
서울 마포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매수인이 이번주 새로 이사 오는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기로 돼 있었는데 세입자는 입주날짜에 맞춰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 이전을 정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매도인이 몹시 난처해하고 있다"며 "매도인 입장에선 며칠 사이에 양도세 차이가 큰데 세입자까지 낀 경우 소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이미 집을 매도한 1주택자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B씨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 여당 부동산특위가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을 검토한다고 말만 꺼내놓고 반년 가까이 움직임이 없어 9월에 집을 팔았는데 지난달 중순부터 갑자기 논의를 재개하더니 순식간에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며 "정치권의 예측 불가한 정책 뒤집기로 국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 들쭉날쭉한 고가주택 기준…세제·대출·청약 따라 천차만별
1주택자의 양도세 비과세 기준이 12억원으로 바뀌면서 '고가주택'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번 조치로 양도세 비과세 고가주택 기준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상향됐는데 대출 규제는 여전히 9억원 초과부터 적용된다.
현재 서울 등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살 때 시세 9억원 이하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40%지만, 9억원 초과분부터는 20%로 줄어든다. 시세 1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아예 대출 자체가 금지된다.
신혼부부나 다자녀·노부모 부양 등에 배정하는 아파트 특별공급 기준도 여전히 9억원이다.
2018년 규정 신설 당시 소득세법의 고가주택 기준을 적용해 만든 규정인데 이번에 고가주택 기준이 12억원으로 올라가지만 특별공급 기준은 그대로다.
종합부동산 과세 기준은 또 다르다. 지난해까지는 1주택자의 경우 9억원 초과분에 대해 종부세가 부과됐는데 올해는 11억원 초과로 기준이 상향됐다.
기준금액을 따지는 방식도 양도세와 대출은 각각 실거래가와 시세인데 종부세는 공시가격이 산정 기준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고가주택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한국부동산원의 10월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4천659만원, KB국민은행의 11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3천729만원에 달한다. 중위가격도 각각 9억6천550만원, 10억800만원으로 9억원을 넘는 상황인데 대출 규제 등이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그때그때 선거나 시류에 따라 정책이 바뀌면서 고가주택 기준도 제각각으로 달라졌다"며 "바뀐 시장 가격과 국민 인식 등을 고려해 복잡한 기준을 손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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