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사육 목적 맞는 성별만 태어나게 조절, 연구진 쓸모없는 고통스러운 죽음 예방 "동물복지 증진"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영국 과학자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생쥐가 한쪽 성(性)만 가진 새끼를 출산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동물 실험실이나 가축사육 농장에서 쓸모가 없어 살처분되는 동물이 아예 태어나지 않게 성비를 조절함으로써 동물 복지를 증진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와 BBC뉴스 등에 따르면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특정 성의 생쥐 배아를 수정 직후 불능화해 한쪽 성만 태어나게 한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대표적인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 DNA를 절단하는 효소인 카스9와 이를 특정 유전자로 데려다주는 '가이드 RNA'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 점을 활용했다.
두 요소 중 하나는 정자의 X 또는 Y 염색체에 넣고 다른 하나는 난자의 X염색체에 주입함으로써 수정이 되면 완전체가 돼 DNA 복제와 수리에 필수적인 'Top 1' 유전자를 제거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가이드 RNA나 카스9가 정자의 X 염색체에 주입되면 난자와 수정해 형성된 XX 배아는 16~32개 세포 이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수컷만 태어나며, 반대로 Y염색체에 주입되면 XY 배아가 타깃이 돼 암컷만 성장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통해 100% 완벽한 결과를 얻었으며, 태어난 새끼도 안전한 것으로 밝혔다.
원리 증명을 위한 이번 연구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Top 1 유전자는 대부분의 포유류가 갖고 있어 다른 포유류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실험실에서 연구 목적과 성별이 맞지 않아 수십만 마리의 생쥐가 폐기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으며, 알을 낳을 수 없는 수컷 병아리라는 이유로 영국에서만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크릭 연구소 성염색체생물학실험실의 그룹장인 제임스 터너는 "생식시스템이나 성별에 따른 질환, 특정 호르몬 등을 연구할 때는 특정 성을 가진 동물만 필요로 한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동물을 이용한 과학실험 분야에서 즉각적이고 가치있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켄트대학의 피터 엘리스 박사는 BBC뉴스와의 회견에서 "가금류 산업에서 매년 40억∼60억마리의 병아리가 살처분되고 있다"면서 "병아리가 알에서 나와 신경시스템을 갖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서 살처분하는 대신 부화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기술은 동물복지를 개선하는데 광범위한 잠재력을 갖고있다"고 강조했지만 윤리적, 규제적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농업분야에서 사용하기 전에 법 개정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대화와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과학적 측면에서도 다른 종에 적용할 수 잇는 유전자 편집 장비를 개발하고 안전과 효율성을 담보하는지를 점검하는 등 해야할 일이 많이 있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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