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냉전 속 1980, 1984년 보이콧 주고받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인류 화합의 대제전이라는 명분에 걸맞게 올림픽 헌장은 스포츠와 정치를 엄격히 구분하지만 현실에선 올림픽이 정치에 휘말렸던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근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면 보이콧은 냉전 중에 벌어진 미국의 1980년 러시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이다.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이 러시아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서방 세력으로 분류된 60여 개국이 이에 동참했다.
그러자 소련을 위시한 동독, 쿠바 등 공산권 10여 개국이 다음 회차 대회인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이집트, 이라크가 영국·프랑스의 제2차 중동전쟁 개입에 반발해 불참했다. 이 대회엔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해 스페인·네덜란드·스위스도 참가를 거부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엔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퇴출당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친선 경기를 한 뉴질랜드가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프리카 28개 국이 불참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공동개최 등을 논의하다가 결국 북한이 불참했다.
이같은 보이콧은 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 행사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참석 여부가 해당 국가의 정치·외교적 노선과 의지를 국제사회에 표명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방증이다.
아예 선수단 전체를 출전시키지 않는 '전면 보이콧'의 형태는 아니지만 올림픽 개최국에 항의해 정부 인사가 불참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14년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인권 유린과 야당 정치인 탄압에 대한 항의 표시로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최국과 껄끄러운 관계인 국가 정상들은 불참하더라도 외교적 불화가 커지지 않도록 우려해 대부분 이유를 밝히지 않곤 했는데, 가우크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인권 문제'를 들고 나서 관심을 끌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소치 올림픽에 불참했다. 그러나 사절단에 왕년의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 등 성소수자를 포함해 러시아의 '동성애 차별법'에 항의의 뜻을 전했다.
내년 2월 열리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이런 '올림픽의 정치화' 역사가 또 한 번 반복될 위기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하는 가운데 미국은 6일(현지시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백악관은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한 배경으로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를 들었다.
중국 신장 지역에서 중국의 인권 탄압이 이뤄지는데 평시처럼 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백악관의 입장이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되 관행적으로 해왔던 정부나 정치권 인사로 꾸려진 사절단은 파견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앞서 미국은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다며 선뜻 올림픽 참가했다가 '낭패'를 본 전례가 있다.
미국은 1936년 나치 정권이 개최한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해 나치의 선전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나치 정권이 유대인 박해로 인권운동가와 정치권에서는 보이콧 요구가 높았는데도 미국 정부가 스포츠와 정치를 구분한다며 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것이다.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도 미국 내 인권 단체와 정치권에서는 미 정부가 전면 보이콧을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미국은 선수단까지 불참하는 전면 보이콧을 하면 국제 정치 논리에 선수만 희생된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미중 관계가 파국에 치달을 수 있다고 보고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절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우방인 영국, 호주 등도 이런 외교적 보이콧 방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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