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발음 대신 고대어 소리로 알려져 불만"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 알파벳을 공부하게 됐다.
잇따라 출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에 그리스 알파벳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많이 들었던 알파(α), 베타(β) 외에도 뮤(μ)와 오미크론'(ο)까지 알게 된 것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인들이 자국어가 전세계에 알려진 점을 뿌듯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해하면서 심경이 복잡하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대에 실제 통용되는 발음이 현대어가 아니라 고대어 추정 발음이라는 점에서 찬란했던 과거만 주목받는 것 아니냐는 이유다.
뉴욕에서 그리스어 강의 라디오를 하고 있는 실비아 파파포스톨로-킨즐은 WSJ에 "우리는 그리스어가 과학 용어로 쓰인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을 있다"라며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코로나19 변이를 표시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알파벳 'ο'가 새로운 변이 이름으로 쓰이고 있지만 현재 그들이 쓰는 발음과는 많이 다르게 불린다는 사실에 불만이다.
사업가 오디세아스 파파디미트리우는 "TV 앵커가 새 변이 이름을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오 마이 크론'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라며 "알파벳 ο의 정확한 발음은 '오어-미-크론'(awe-mee-kron)"이라고 말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 알파벳 ο가 정확하게 어떻게 발음됐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언어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어가 현대 언어와 매우 다르게 발음됐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 고대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음됐는지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고대어가 녹음되지 않았고 직접 들은 현대인도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고대어 ο가 현대와 마찬가지로 '오어-미-크론'으로 발음되거나 '오 마이크 론'(oh-mike-ron)으로 불릴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미크론 발음 논란에 대해 WSJ는 단순히 영어에서 '토메이토냐 토마토냐'라는 논쟁처럼 결국 그게 그것으로 귀결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진단했다.
캐서린 플레밍 뉴욕대 교수(현대 그리스어 전공)는 "그리스 사람들에겐 이런 발음 논란은 세계에서 그리스에 대한 인식이 점차 줄어드는 데 대한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인은 그리스어 알파벳을 수학과 과학분야에서 여러 기호에 붙여 쓰면서도 정확한 발음에 신경쓰지 않지만 그리스인에겐 존재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19 변이가 더 나온다면 발음 논란이 더 이어질 수 있다.
다음 알파벳인 'Π'의 경우 현대 그리스어에선 '피'(Pee)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인을 제외하고는 이 문자를 '파이'로 발음한다.
비단 코로나19 변이 이름만 문제가 아니다. 미국 등 서방에서 다른 그리스 단어를 발음할 때 현재 그리스에서 쓰이는 발음을 무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오이코스(Oikos) 요거트'의 경우 그리스에선 오이코스가 아닌 '이이코스'라고 부른다.
올해 미국 증시의 대폭락을 촉발한 '아케고스(Archegos) 캐피털 매니지먼트'도 한때 발음을 두고 논란이 됐었다.
많은 미국 언론은 '아-케이-고스'(ar-kay-gos)라고 발음했으나 실제 그리스어론 '아-히-요스'(ar-hee-yos)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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