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해외 관광객 사라졌지만 새 수익모델 창출로 활로
"과도한 관광객 유입 부작용 커…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감소로 고전하던 일본 관광업계가 자국민 고객 유치로 활로를 찾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때부터 관광 산업을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정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였지만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 사태로 관광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일본 관광업계는 최근 중국과 한국 관광객의 빈 자리를 충성도가 높은 자국민 고객 유치와 새 수익사업 개발 등으로 메우며 '외국 관광객 없이 살아가기'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 사라진 해외 관광객 빈자리 내국인 관광객이 메워
일본 정부는 2차 아베 정권이 출범했던 2012년 말부터 관광 산업을 성장 전략의 주요 축으로 정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3년 약 1천만 명이었던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은 2018년 3천만 명으로 3배나 증가했다.
외국인 여행객 유치를 위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항공노선을 확충하는 등의 대책이 주효했다.
일본은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도쿄(東京)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4천만 명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났다.
코로나 여파로 도쿄올림픽은 1년 연기됐고,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00만 명대에 그쳤다.
당연히 일본 관광업계도 팬데믹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고,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폐업하는 여행업체도 속출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벼랑 끝에 몰렸던 일본 관광업계가 차츰 '뉴노멀'(새 표준)에 적응하면서 조용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넘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던 일본 관광업계는 코로나 사태로 고사 위기에 직면했지만 점차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도쿄에서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유명 관광지 가마쿠라(鎌倉)에 2019년 10월 부티크 카페를 오픈한 시마자키 료헤이 씨는 매장을 연 지 얼마 안 돼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시마자키 씨는 SCMP에 "2019년 10월 카페를 연 뒤 짧은 기간 일본인 여행객뿐 아니라 중국인과 러시아인 단체 여행객까지 몰려와 바빴지만 이듬해 1월이 되자 모든 것이 멈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으로 일본이 사실상 국경을 폐쇄하면서 해외 관광객이 사라졌고 시마자키 씨를 포함한 일본의 관광·요식업계 종사자들은 매출이 급감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들은 지난달부터 일본 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정상화되리란 기대를 품었지만 또다시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2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처럼 해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시마자키 씨를 포함한 일본의 관광·요식업계 종사자들은 점차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시마자키 씨가 운영하는 카페는 최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점심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를 이용해본 지역민들이 하나둘씩 카페를 찾는 충성 고객이 됐다.
일본 정부도 국내 관광을 활성화하는 취지의 '고투(Go To) 프로모션'을 전개해 지금까지 5천260만 명의 일본인이 이 프로그램으로 국내 관광에 나섰다.
일본교통공사(JTBF)에 따르면 이들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국내 관광을 위해 쓴 비용만 1조8천억 엔(약 18조 원)에 달한다.
도쿄 긴자(銀座)에서 76년 역사의 유명 해산물 레스토랑 '신 히노모토'(新日の基)를 운영 중인 영국인 앤디 런트 씨는 SCMP에 "팬데믹 확산 초기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시 바빠졌다"며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차지하던 예약석을 지금은 지역 단골손님과 회사원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中 관광객 없으니 오히려 쾌적…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일본인은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해외여행을 즐기는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다.
오히려 한해 3천만 명이 넘게 몰려오던 해외 관광객이 사라진 지금이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일본인들이 국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이제는 더는 유명 관광지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해외 관광객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고 시끄러운 단체 관광객과 충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SCMP에 따르면 일본의 유명 관광지인 교토(京都)나 도쿄 긴자 같은 곳은 2010년대 중반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중국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다.
일본관광청(JTA)에 따르면 2007년 94만 명 수준이던 중국인 관광객은 2019년 960만 명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일본 관광 수요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거주 인구가 150만 명에 불과한 교토에 한해 무려 5천35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을 정도였다.
교토의 관광 성수기인 4월에는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내·외국인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관광 명소로 소문난 주요 사찰과 인근 카페, 레스토랑은 너무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교토에 거주하는 다도(茶道) 강사 사사키 에이코 씨는 "관광객이 너무 많았다"며 "심지어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금지된 행위인데도 마이코(舞妓·수습과정에 있는 예비 게이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의 거주지까지 뒤따라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너무 많은 해외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부작용이 커지자 교토 시민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관광객 유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고 SCMP는 전했다.
일부 관광객들의 무례한 행위도 이런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교토 지역 매체는 일하러 가는 게이샤(芸者)를 멈춰 세우고 그들의 머리 장식을 훔치거나 현지인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대나무숲에 들어가 대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등의 행위가 지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지난해 1월 실시된 교토시장 선거에서는 입후보한 3명의 후보가 모두 교토 시민들이 제기한 과도한 해외 관광객 유입 문제 해결을 주요 정책 목표로 거론하기도 했다.
교토의 일본 기업에 근무하는 한모(33) 씨는 "한창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들 때는 인기 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자리를 잡는 것도, 시내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해외 관광객이 사라진 지금이 오히려 쾌적하고 좋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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