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시진핑 장기집권 '전주곡' 중국공산당 역사박물관

입력 2021-12-08 09:12   수정 2021-12-08 10:44

[르포] 시진핑 장기집권 '전주곡' 중국공산당 역사박물관
'시진핑 기획·시진핑 주연' 공산당 100년 대서사시 구현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통즈먼하오(同志們好·동지들 안녕하십니까), 주시하오(主席好·주석님 안녕하십니까)"
중국공산당 역사 전람관(박물관) 3층 전시관에 설치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에는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사열 차에 올라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목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다른 역대 지도자들의 열병식 조형물과 달리 시 주석의 열병식 장면은 LED 스크린의 장막으로 둘러싸여 위용을 자랑했다.
전체 전시관 중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는 3층 시진핑 집권 1, 2기 전시관은 평일 오전임에도 단체 관람객들로 붐볐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부터 단체 휴무를 하고 온 회사 소속 공산당원들까지 개관 시간인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가 줄을 지어 입장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조망하는 박물관이지만 실상은 시 주석의, 시 주석에 의한, 시 주석을 위한 박물관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시 주석의 업적을 찬양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시 주석은 집권 2기의 시작인 2017년 10월 19차 당 대회가 끝나고 얼마 뒤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맞춰 박물관 설립 계획을 세웠다.
박물관의 총 기획자가 바로 시 주석인 셈이다.
박물관의 외관부터 살펴보면 길게 뻗은 박물관의 기둥은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크기다. 박물관 사면에는 28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는 공산당 창당인 1921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인 1949년까지 28년의 항쟁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바라본 건물 모양은 한자인 '공'(工) 자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공산당이 노동자의 선봉을 뜻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건 600㎡짜리 타일 100장을 이어 붙여 만리장성을 그린 압도적인 크기의 '장성송'(長城頌)이다.
전시관 벽면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란 크기의 장성송은 공산당 100년 역사를 상징한다.
전시관은 1∼3층에 걸쳐 공산당 100년사가 소개돼 있고, 4층에는 공산당을 선전하는 예술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은 ▲ 공산당 창립과 신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 개혁개방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개창과 발전 ▲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진입과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 시작 등 시기별로 총 4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최고 지도자의 집권기로 구분하면 앞의 두 챕터는 마오쩌둥(毛澤東) 집권기, 세 번째 개혁개방 시기는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 마지막은 시진핑 집권 1, 2기로 나눌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만 2천500장, 유물과 실물 크기 전시물은 4천500개에 달한다.
성인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도 2시간이 족히 걸릴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 11월 중국공산당이 발표한 제3차 역사 결의가 떠오른다.
전시관의 구성부터 시대 구분, 지도자별 분량 분배까지 모든 게 닮아있다.
역사 결의를 시각화해 보여준다면 딱 박물관의 모습일 것이다.
전시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신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과 시 주석의 전시관 규모가 비슷한 반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기 전시관은 한 챕터로 묶여 있는 점이다.
시 주석을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리고, 나머지 지도자와는 구별을 두겠다는 현 정권의 시각이 반영된듯했다.


시 주석 집권기를 다룬 전시관에는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시 주석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는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전시물도 많았다.
또 한 가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중요 전시물 옆에 걸린 빨간색 현판에 걸린 역대 지도자의 어록이었다.
이 어록은 전체 23개 중 18개가 시 주석의 어록으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시 주석의 공식 행사 발언이나 강연을 옮겨 적어 놓은 것이다.
관람객들의 동선에 맞춰 배치한 어록 때문에 마치 시 주석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연출해놓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공산당 내에서 과오로 평가되는 문화대혁명 파트나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집권기 전시관에는 시 주석의 어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시 주석을 마오쩌둥 외 나머지 지도자들과 구분하고, 조금이라도 오점이 될만한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도가 잘 드러났다.
시 주석의 완전무결함을 나타내는 철저한 계획과 연출은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느낄 수 있다.
조금 확대 해석을 하자면 이번 전시 자체가 시 주석이 기획하고 주연을 맡은 장기집권 전주곡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고 있지만, 박물관은 하루 최대 관람 인원인 3천 명을 꽉꽉 채우며 연일 만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chin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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