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부츠·크리스마스 게임 늦게 도착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지난 8월 말 'A킨카'라는 작은 컨테이너선이 홍콩을 떠났다. 50인치 로쿠 스트리밍 TV, 알루미늄 주방용기, 펜더 기타와 캘리포니아의 작은 장난감회사로 갈 체스 세트 등이 실려있었다.
이 선박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항구 앞바다에 9월 12일 도착했으나, 이를 맞이한 것은 입항 대기 중이던 다른 선박 수십 척이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장장 54일을 기다리다 겨우 화물을 내린 이 화물선의 사례를 통해 세계적 물류 대란의 현장 실태를 조명했다.
하역 대기시간이 일주일 이내인 선박도 있었으며 1∼3주 기다린 배가 가장 많았다. A킨카는 기술적 문제가 없었던 선박 가운데 가장 오래 대기했다.
거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을 포함한 100개 넘는 기업의 화물이 175m 길이의 이 배에 실려있었다.
큰 기업들은 가용 자원이 많기 때문에 공급망 지연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컨테이너 한두 개만 기다리던 소기업들은 하역 지연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고 WSJ은 지적했다.
한 소기업은 핼러윈용 부츠가 핼러윈을 넘겨 도착했다. 다른 기업은 조명을 배송하지 못해 대금 25만 달러(약 2억9천400만원)를 받지 못하고 있다.
A킨카가 LA항에 도착한 지 1주일이 지난 9월 19일은 LA항이 올해 가장 붐빈 날이었다. 이날 27척이 입항해 하역 작업 중이었고 A킨카 등 73척은 항구 앞바다에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A킨카에 화물이 있던 100개 이상 기업의 대부분은 다른 선박에도 화물이 있었다. A킨카에만 화물이 있던 업체는 장난감회사, 조명회사 등 소기업을 포함한 30여곳이었다.
일부 소기업은 컨테이너 몇 개를 실으려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운임을 지불했지만, 화물이 지연되고 말았다.
임직원이 16명뿐인 캘리포니아의 작은 완구회사 '존 N. 핸슨'은 A킨카에 컨테이너 2개가 있었다. 컨테이너 하나에는 소형 장난감 가게로 갈 체스와 백개먼 게임 세트 2만6천개가 들었고 다른 하나에는 카지노에서 주문한 미니 슬롯머신 등이 있었다.
이 업체 사장 존 핸슨 3세는 큰 업체들의 경우 물류 대란을 예상하고 제품을 가능한 한 빨리 확보했다며 "소규모 매장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A킨카에 실려 있는 이 회사의 게임 세트는 애초 9월에 소매업체에 도착했어야 했다. 핸슨은 컨테이너당 2만7천달러(약 3천200만원)를 지불했는데 이는 1년 전의 10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이 회사는 올해 2차례에 걸쳐 제품 가격을 10% 올렸지만, 비용 상승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이 회사는 11월 말에야 체스와 백개먼 게임을 받았다. 하지만 미니 슬롯머신 등이 실려 있는 컨테이너는 이달 초까지도 항만에 묶여있어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10월 31일 핼러윈이 오래전에 지났지만 캘리포니아에 있는 신발업체 'YRU'의 고객들은 핼러윈 부츠를 받지 못했다. 140달러짜리 핼러윈 부츠 400켤레는 YRU의 창고에 11월 20일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10여명의 종업원을 둔 이 업체 소유주 어니 누녜즈는 "이런 일을 겪은 것은 내가 신발 업종에 있었던 30년 동안 처음"이라고 말했다.
YRU는 컨테이너 안에 핼러윈 부츠 외에도 7천355켤레 신발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또 다른 소기업 '에이브라 조명'의 제품이 A킨카 안에 갇힌 것은 내년 1월 문을 열 예정인 유타주 파크시티의 펜드리파크시티호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호텔은 리셉션 구역의 발광다이오드(LED) 맞춤 조명을 기다리고 있다.
5명짜리 작은 회사인 에이브라는 지연으로 자금 압박을 겪고 있다. 이 업체는 컨테이너 안의 제품 가격과 관세, 운송비 등을 선지급했지만, 물품을 고객에게 넘길 때까지는 대금을 받지 못한다.
에이브라 소유주 배리 커스틴은 "중국에서 컨테이너를 실었을 때부터 통상적인 30일이 아니라 5∼6개월이 걸릴 것"이라며 "수송 지연 때문에 대출받을 곳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A킨카는 지난달 8일 컨테이너를 내린 뒤 항구를 떠났다. 당시 다른 컨테이너선 77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달 6일 기준 LA항과 롱비치 항구 주변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컨테이너선은 94척에 이르렀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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