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멕시코 탑차, 굽은길 사람무게 못이겨 전도
중경상 53명…불법체류 적발 피해 피흘리며 도주하기도
빈곤·범죄 피해 미국행…밀입국업자 의존해 위험한 여행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멕시코에서 9일(현지시간) 미국으로 향하던 중남미 이민자 100여명을 짐처럼 실은 화물탑차가 넘어져 수십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빈곤과 범죄집단의 폭력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던 미등록 이주자들과 관련한 최악의 사고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AP, AFP통신은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주 툭스틀라 구티에레스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로 최소 54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멕시코 당국은 당초 사건 현장에서는 49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나 현지 언론들이 확인하는 사망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부상자는 53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사고는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주의 주도 툭스틀라구티에레스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커브 길에서 발생했다.
굽은 도로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진 트럭은 근처에 있던 철제 육교 하단과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다.
모레노 청장은 화물트럭이 과속하다가 짐처럼 실은 사람의 무게 그 자체 때문에 넘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한 과테말라인 생존자는 "트럭이 굽은 길을 돌 때 트럭 안에 있던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모두 한쪽으로 쏠렸다"고 증언했다.
통신은 트럭이 육교와 충돌한 뒤 열리면서 탑차가 열리면서 탑승자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보도했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발표된 사상자를 종합하면 트럭에는 최소 107명이 타고 있던 것으로 집계된다.
AP통신은 부상자, 사망자 외에 트럭에 탄 이민자들이 더 있었다고 출동한 구조대를 인용해 보도했다.
구조대는 이들 이민자가 미등록 체류가 당국에 적발될까 두려워 현장을 급히 떠났다고 말했다.
한 구급대원은 일부 부상자가 피를 흘리면서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현장을 벗어났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난 치아파스주는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주민들의 주요 경유지다.
사고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트럭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출신 등 이민자들이 있었고, 8∼10명 정도가 어린아이들이었다.
AP통신이 인용한 현지 관계자도 탑승자 대부분이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출신 이민자라고 확인했다.
사고 생존자들은 밀입국 알선업자에 돈을 내고 멕시코 남부 국경 인근에서부터 중부 푸에블라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멕시코 당국은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 이주 행렬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빈곤, 범죄집단의 폭력,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보건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올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임 정권과 달리 이민 포용 정책을 약속하면서 미등록 이민자 수가 급증했다.
멕시코 당국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적발한 미등록 이민자는 지난해보다 3배가 증가한 19만명에 달한다.
지난 10월엔 트럭 6대에 나눠타고 미국에 밀입국하려던 중미인 652명이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들은 환기가 잘되지 않는 대형 트럭에 빽빽하게 몸을 숨긴 채 장시간 이동하며 질식 등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
국제이주기구(IOM)가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숨진 사람은 최소 650명으로 IOM 집계가 시작된 2014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천 달러를 알선업자들에게 내고 트럭으로 이동하는 이주민과는 달리 수천㎞를 북쪽으로 걸어가는 '카라반' 행렬도 있다.
지난 10월 말부터 이주민 수백명이 치아파스주 남부 도시 타파출라에서 출발해 현재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에 거의 도착했다.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손을 든 지난 8월 법원 결정에 따라 다시 이달 초부터 중남미 미등록 이주민이 멕시코에 머물며 망명, 난민자격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들 이주민의 미국행이 다시 밀입국 알선업자 손에 맡겨지는 경우가 늘어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kit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