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하룻밤 새 모든 게 변했다…'쑥대밭' 된 켄터키 소도시

입력 2021-12-14 07:42   수정 2021-12-14 10:53

[르포] 하룻밤 새 모든 게 변했다…'쑥대밭' 된 켄터키 소도시
인구 1만 메이필드…토네이도 할퀴고 간 길목에 성한 건물 거의 없어
순식간에 닥친 재앙에 주민들 공포…엄청난 피해에 복구 시간 걸릴 듯


(메이필드[미 켄터키주]=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극도로 처참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흘 전 토네이도에 강타당한 미국 켄터키주의 소도시 메이필드는 13일(현지시간)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곳곳에서 잔해를 걷어내는 중장비 가동 소리가 들렸지만 그뿐이었다. 다들 묵묵히 복구작업에 열중했고 입을 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붕부터 모두 무너져내린 건물의 잔해가 사방에 널려있었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경로에 성한 건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법 오랜 세월을 견뎠을 묵직한 나무들이 뿌리부터 드러내고 쓰러진 채 도로를 막고 있었다. 허공에 드리웠던 전선들은 아무렇게나 도로에 흩어져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을 잡아챘다.
전기가 나간 탓에 신호등에는 아무 색깔도 들어오지 않았다. 교차로에 통행을 정리할 인력도 없어서 운전자들이 눈치껏 서로 양보하며 갈 길을 갔다.

태라라는 이름의 32세 여성은 무너진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살던 집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바닥까지 내려앉은 지붕을 중장비로 끌어내자 온통 뒤엉켜버린 살림이 드러났다. 태라와 함께 온 7∼8명이 곧바로 잔해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거북이 인형을 꺼내왔다. 인형을 받아들고 흙을 털던 태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딸들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이었다. 태라가 가져온 커다란 바구니에 잔해 속에서 건져진 추억의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태라는 "토네이도가 올 때 너무 무서웠다. 집이 흔들렸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다가 어느 순간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공포스러웠다"면서 "열한 살, 열세 살인 내 딸들이 모든 걸 잃었다. 모든 게 괜찮아질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마이크라는 60세 남성의 집은 유리창이 전부 깨졌지만 무너지지는 않은 덕분에 겉으로는 비교적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토네이도가 온 밤엔 식탁이 뒤집어지고 집안이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전기도 나갔고 물도 끊겼다고 한다.
마이크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오늘 죽겠구나 했다. 그런 굉음은 들어본 적이 없고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마이크는 고향의 변해버린 모습에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다가 "우리 동네가 사라져버렸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번 토네이도로 지붕이 무너진 양초 공장의 사망자 중에는 마이크의 친구도 있다고 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고 너무 화가 난다. 이런 엄청난 재앙이 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탄식했다.
인구 1만 명 규모의 소도시 메이필드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렸다. 다수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족 및 친구와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평생을 살아가는 동네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들이닥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 중 여러 사람이 기자에게 평생 처음 보는 한국인이라고 했다. 중부 내륙이라 미국 동·서부지역 큰 도시에 비하면 외부와의 접촉이 크게 적은 지역인 셈이다.

곳곳에서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었지만 사방을 뒤덮은 피해에 비해 인력도 장비도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누구도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점을 장담하지 못했다. 당국에서는 전기가 들어오는 데만 한 달이 걸릴 수 있다고 주민들에게 안내했다고 한다.
낮에는 기온이 10도 이상으로 올라 그나마 지낼만 하지만, 아침에는 0도 정도까지 떨어져 일교차가 큰 데다가 점차 추위가 심해질 수 있어 주민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다.
제프리라는 20세 남성은 "당국에서 식수 같은 생필품을 나눠주고 있기는 하지만 점점 추워지고 있고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게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금요일인 지난 10일 최대 50개의 토네이도가 발생, 켄터키를 비롯해 아칸소와 일리노이, 미주리, 테네시 등 중부 지역을 강타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일으켰으며 그 중 켄터키주 메이필드의 피해가 가장 컸다.
앤디 버시어 켄터키주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켄터키에서만 74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실종상태이며 사망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연방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15일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na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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