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호숫가 주변 숲 개활지로 전환…꽃가루 등 통해 2천년 간 지속 분석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인간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생인류의 멸종한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이 이보다 훨씬 앞선 약 12만5천년 전에 이미 주변 생태계를 바꿔 놓았던 것으로 제시됐다.
자신들이 생활하던 호수 주변의 숲을 태워 개활지로 바꾼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에 따르면 이 대학 고고학 교수 빌 루브룩스 박사가 이끄는 학제 간 연구팀은 독일 중동부 할레 인근의 채석장 노이마르크-노어트 주변에서 발굴된 꽃가루와 숯, 동물 화석, 석기 등을 통해 인간의 조상이 주변 환경을 바꾼 가장 오래된 증거를 확보했다고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고대 호수 주변으로 밝혀진 이곳은 약 12만5천년 전에는 울창한 낙엽수림이었으나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나면서 산불 등으로 개활지로 바뀐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이 주변에서 불을 지피고 도구를 만들어 사냥하는 등 약 2천년 간 생활하면서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이곳에서 나온 꽃가루가 약 12만5천년 전에 개활지에서 자라는 초본식물이 단기간에 걸쳐 번성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 주요 근거가 됐다.
불로 가열해 끝을 날카롭게 만든 것을 포함한 많은 양의 석기와 동물 뼈도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아직 현생인류의 조상이 유럽지역으로 진출하기 전으로 주변에는 네안데르탈인만 있었다.
인근의 다른 고대 호숫가에서는 노이마르크-노어트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흔적이 없었으며 울창한 숲도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공동 저자인 레이던대학 고식물학자 코리 바켈스 교수는 "인간의 조상이 도착하고 개활지가 됐는지 아니면 개활지였기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지는 분명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수렵채집인들이 적어도 2천년간 이곳을 개활지로 유지했다는 결론을 내릴 충분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했다.
인간은 약 1만년 전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무를 베어내고 밭을 만드는 등 주변 환경을 본격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사람속(屬)이 약 40만년 전부터 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연구된 만큼 훨씬 더 일찍부터 불을 이용해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이마르크-노어트에서 확인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이른 증거 중 하나로 지적됐다.
루브룩스 교수는 "초기 수렵채집인들이 단순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열매를 따고 동물사냥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환경을 바궜다"면서 "미래 연구에서 인간의 조상이 훨씬 더 이전에 주변 환경에 국지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나타내는 흔적이 발견돼도 놀랄 이유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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