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구속력 없는 의견표명 제도…보수·우익세력 반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에게 주민투표권을 부여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했으나 반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도쿄도(東京都) 무사시노(武藏野)시 의회는 외국인이라도 3개월 이상 거주했으면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투표권을 인정하는 주민투표 조례안을 21일 본회의에서 부결했다고 의회 사무국 관계자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사무국 관계자에 따르면 의장을 제외하고 25명이 참가한 표결에서 반대가 14표로 찬성(11표)을 웃돌아 조례안이 부결됐다.
자민당이 중심이 된 회파(會派, 원내에서 활동을 함께 하는 의원 그룹)인 '자유민주·시민클럽'과 공명당이 반대표를 던졌고 소수파인 '와쿠와쿠하타라쿠'와 일부 무소속 의원도 반대했다.
입헌민주당이 중심이 된 입헌민주네트와 일본공산당 등이 찬성했다.
조례안은 이달 13일 열린 총무위원회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3대 3 동수를 이룬 가운데 위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찬성으로 가결됐다.
조례안은 무사시노시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18세 이상 시민이면 국적과 상관없이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유권자가 투표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리콜'제도와 달리 주민투표 결과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리콜은 한국의 주민소환제와 비슷하다.
무사시노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같은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외국 국적의 분들도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투표 조례를 추진했다.
무사시노시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2천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조례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73.2%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과 보수·우익 세력이 외국인에게 주민투표권을 주는 것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논쟁이 가열됐고 결국 조례안이 부결됐다.
앞서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자민당 중의원 의원은 이를 참정권과 결부하며 반대했고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참의원 의원은 일본 내 중국인을 대거 무사시노시에 전입시켜 주민투표 결과를 좌우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일본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사회 기능 유지를 위해 외국인 노동력에 점점 많이 의존하는 상황이지만 이들의 권리 인정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 예상된다.
앞서 무사시노시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작년 12월 기준 주민투표를 할 수 있는 상설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일본 전국에 78개가 있는데 이 중 43개 지자체가 투표권자에 외국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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