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보도 적정선은?…"모순 비추는 거울·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오사카(大阪)의 방화 살인은 범죄 보도를 어디까지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도는 불특정 다수를 노린 방화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상세한 정보가 모방 범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 용의자가 이달 17일 다니던 병원에 휘발유를 가져가 불을 지르면서 2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본 언론은 사건 발생 전 그의 행적 등에 관해 매우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니모토가 범행에 사용한 휘발유를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했다.
3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9년 7월 '교토(京都)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 후 일본 당국은 휘발유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판매 관련 규제를 강화했는데 범행을 작정한 이들을 막기는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일본 언론은 다니모토가 화재 진화를 방해하거나 인명 피해 규모를 키우기 위해 사전에 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치에 관해서도 사건 수사와 관계있는 이들을 취재원으로 삼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일련의 보도는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사건에 관한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제도의 미비점이나 구조적 문제점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범행 수법에 관한 상세한 보도가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10월 말 도쿄의 전철에서 방화 및 흉기 난동을 벌인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는 올해 8월 벌어진 사건을 따라 한 것이라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바 있다.
다니모토 역시 다른 사건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주목된다.
그의 집에서는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
저술가로 활동하는 아사노 겐이치(?野健一) 전 도시샤(同志社)대 대학원 교수(신문학)는 "일본에서는 모방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면서 "자세한 수법 등이 보도되는 것에 자극받아 자신도 같은 수법으로 해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이날 연합뉴스에 서면으로 의견을 밝혔다.
그는 경찰이 용의자의 이름을 공표해 일제히 실명 보도가 이뤄진 것에 관해 "이번 사건처럼 죽음을 각오한 범행에 이른 경우 실명(공개)에 의한 사회적 제재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찰은 통상 피의자(용의자)를 체포한 후 이름을 공개하며 총기를 소지하고 도주하는 등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위험이 큰 사례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전에 공표한다.
다니모토는 화재로 중태에 빠졌다.
오사카부(大阪府) 경찰본부 측은 사안이 중대하고 피해자나 유족이 용의자 특정을 원하고 있으며 다니모토가 중태가 아니었다면 체포영장을 청구할 단계까지 수사가 진행됐다는 취지로 현지 언론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취재 경험이 풍부한 교도통신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 씨는 일본 언론이 구조적·전통적으로 경찰이나 사건·사고 취재에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이번 보도 행태가 "과잉이라고 생각된다"면서도 "다만 일괄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언급했다.
그는 용의자가 처했던 어려운 환경이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 아주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점 등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이번 사건 보도로 조명된 측면도 있다면서 "사건·사고 보도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모순이나 뒤틀림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덧붙였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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