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대 교정에 지난 24년간 전시돼 있던 중국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조각상이 결국 철거됐다.
중국에 이어 홍콩에서도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행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홍콩 당국의 톈안먼 흔적 지우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홍콩대는 23일 성명을 통해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조각상 '수치의 기둥'(國?之柱·Pillar of Shame)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발표했다.
홍콩대는 "외부 법률 자문과 대학에 대한 리스크 평가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전날 밤 소셜미디어에는 '수치의 기둥' 주변에 노란색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사진 등이 공개됐으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대는 철거 작업에 대해 사전 고지를 않았으며, 10여명의 경비가 철거장소 주변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수치의 기둥'은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시위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이다. 높이가 8m, 무게가 2t에 달한다.
덴마크 작가 옌스 갤치옷이 제작해 1997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에 기증했고, 지련회가 홍콩대에 전시했다.
지련회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행사를 진행해온 단체로, '수치의 기둥' 세정식도 연례 행사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지련회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는 당국과 친중 진영의 전방위 압박 속에서 지난 9월 말 자진해산했다.
그 직후 홍콩대는 지련회 측에 '수치의 기둥'을 10월 13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임의로 치우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갤치옷 작가는 '수치의 기둥'의 소유권은 지련회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면서 학교 측에 임의로 '수치의 기둥'을 철거하지 말 것을 요청해왔다.
그는 '수치의 기둥'이 약 140만 달러(약 16억원)의 가치가 있으며 복잡한 철거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홍콩에 직접 가야한다고 말했다.
갤치옷 작가는 지난달에도 공개서한을 통해 자신이 직접 철거하러 홍콩에 갈테니 자신이 홍콩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명보는 "홍콩대가 지난주 홍콩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사회 회의를 소집했고 작가가 와서 가져갈 때까지 '수치의 기둥'을 다른 곳에 임시로 옮겨놓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톈안먼 민주화시위는 1989년 6월 4일 반부패와 개혁 등을 요구한 대학생 중심의 시민 시위대가 인민해방군에 의해 유혈 진압된 사건이다.
이후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언급하는 게 금기다.
중국공산당은 지난달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채택된 역대 세 번째 역사결의에서 톈안먼 시위를 '정치 풍파'와 '동란'으로 규정했다. 중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30여년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행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지난해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에 이어 지련회의 해체로 이제 홍콩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국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31년 만에 처음으로 톈안먼 추모집회를 불허한 데 이어 올해도 같은 이유로 불허했다.
지련회 간부들은 홍콩 당국이 불허한 집회의 참가·조직 등의 혐의로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았고, 지련회의 톈안먼시위 추모기념관도 당국의 단속에 문을 닫았다.
이후 홍콩 당국은 지련회의 홈페이지와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의 운영도 중단시켜 지련회가 30여년 축적해온 역사적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모두 차단됐다. 해외 활동가들이 해외 서버를 통해 개설한 톈안먼 추모 온라인기념관 '8964 기념관'도 홍콩에서 접속이 안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역사 말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대 학생 찬은 로이터 통신에 "홍콩대가 한밤중에 이런 일을 한 것은 비겁하다"며 "홍콩대는 학문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적 기념물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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