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줘 온 예술작품이 철거됐습니다.
중국에서는 언급조차 금기인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하는 거대한 조각상이 지난 24년간 홍콩대의 교정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난 22일 밤 기습 철거됐습니다.
홍콩대는 23일 성명을 통해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조각상 '수치의 기둥'(國?之柱·Pillar of Shame)을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발표했습니다.
홍콩대는 "외부 법률 자문과 대학에 대한 리스크 평가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높이 8m, 무게 2t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톈안먼 민주화시위에서 희생된 이들이 괴로움과 슬픔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홍콩대가 말하는 '리스크'란 지난해 6월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입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합니다.
홍콩대는 '수치의 기둥'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의 소유라고 보고 있으며, 지련회가 지난 9월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속에서 해산하자 그 직후 이 조각상을 철거하라고 지련회에 통보했습니다.
지련회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행사를 진행해온 단체입니다.
덴마크 작가 옌스 갤치옷이 '수치의 기둥'을 제작해 1997년 지련회에 기증했고, 지련회는 이를 홍콩대 학생회와 함께 홍콩대에 전시하며 매년 세정식을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첫 세정식인 올해 5월 행사는 삼엄한 감시의 눈길 속에서 열렸습니다.
친중 진영에서 지련회의 '일당 독재 종식' 강령 등이 홍콩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올해 세정식에서도 참가자들은 묵념을 한 뒤 "일당 독재 종식"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당시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전 주석 앨버트 호는 "조각상 세정식 행사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며 "홍콩이 여전히 살아있는지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행사 이후 일부 홍콩 언론에서는 '수치의 기둥'의 홍콩대 캠퍼스 내 존치 여부가 불확실해졌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지난 10월 말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홍콩 민주화 운동가 네이선 로(羅冠聰)가 이탈리아 로마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홍콩대의 '수치의 기둥' 철거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로는 '수치의 기둥' 모형을 실은 트럭 위에 올라가 확성기에 대고 중국대사관을 향해 "(수치의 기둥은) 중국공산당이 자국민에 자행한 학살과 잔혹행위, 자기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려는 중국인들의 염원 탄압에 대한 진술이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아래 매년 6월4일 빅토리아 파크에서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행사가 열렸습니다. 매년 수천∼수만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31년 만에 처음으로 빅토리아 파크 추모집회를 불허한 데 이어 올해도 같은 이유로 불허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련회마저 해산하면서 '수치의 기둥'도 결국 철거됐습니다.
조각상은 여러개의 조각으로 잘라져 해체됐습니다.
그간 갤치옷 작가는 복잡한 철거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홍콩에 직접 가야한다며 대학 측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조각상은 결국 작가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됐습니다.
앞서 홍콩 당국은 지련회가 30여년 수집한 톈안먼 시위 관련 자료들을 올려놓은 모든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폐쇄했습니다. 또한 지련회의 톈안먼 추모기념관도 당국의 단속 속에서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홍콩에서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도, 자료도, 상징물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