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맞아 전쟁보단 축제 준비중…수년째 이어진 위기에 둔감해져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민들은 전쟁이 임박했다는 뉴스 속에서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시즌을 즐기고 있다.
키예프 시의회는 방공호 안내문을 붙이기보단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있으며, 군대 모집보다는 연말 공연 조직에 열중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키예프 중심가의 한 미용실에서 일하는 올리야 심비로바(25)는 "키예프에서는 많은 파티가 열릴 예정이고 나도 가족, 친구들과 새해를 보낼 계획"이라며 "내 주변에서는 누구도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 우려에도 키예프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키예프가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 700㎞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옆 나라 벨라루스에도 군대를 배치하면서 키예프를 공습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일단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와의 분쟁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전쟁 우려가 일상화된 탓에 시민들이 무덤덤하게 됐을 것이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가 2014년 크림반도를 빼앗긴 이후 동부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정부군의 무력 충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이런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12월 1∼2일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았다"고 말했지만, 실제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았다.
심비로바는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대부분 과장된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키예프 국제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의 절반은 러시아 침공 시 무기를 들고 저항하거나 시민 저항 세력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키예프의 한 국제개발단체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예베니야 부르디얀(49)은 본부로부터 이주 준비를 하고 가장 가까운 방공호 위치를 확인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
동부 도네츠크 출신인 그는 분리주의자에 의한 무력 충돌이 계속되자 2014년 가족과 함께 키예프 외곽지역으로 건너왔다.
부르디얀은 "또다른 전쟁을 생각하기에는 생활이 너무 바쁘다"며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소소한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 20㎞ 떨어진 마리우풀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곳은 러시아 침공 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 지역 의회도 연말을 맞아 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마리우풀에서 활동가이자 프로젝트 관리자로 일하는 갈리나 발라바노바는 "마우리풀시는 이곳을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인근 다른 지역과 달리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발전된 도시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마리우풀과 같은 동부 도시를 개발해 지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발라바노바는 그의 친구들과 뉴스를 보며 러시아가 어느 지역을 공격할지 분석하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군대와 지원병을 믿는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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