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민주진영 매체 2곳 폐간
"법 위반시 평생 쫓을 것…언론인은 썩은 사과 멀리 하라"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매체 두 곳이 당국의 압박에 폐간했다.
중국의 눈엣가시였던 빈과일보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7월 1일)을 앞두고 문을 닫았고, 그 다음 타깃이 될까 우려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던 입장신문도 해가 바뀌기 전에 '정리' 됐다.
서방 국가와 언론단체들은 홍콩의 언론 자유가 추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 정부는 법만 잘 지키면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홍콩 언론계는 자기검열과 공포의 확산 속에서 다음 타깃은 누가 될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 외세와 결탁·선동 혐의…"법 위반시 평생 쫓을 것"
홍콩 경찰은 지난 6월 17일 반중매체 빈과일보를 급습해 간부와 주필을 체포하고 자산을 동결했다. 2019년부터 실린 30여편의 글이 홍콩국가보안법상 외세와 결탁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다. 일주일 후 26년 역사의 빈과일보는 폐간했다.
홍콩 경찰은 이어 지난 29일에는 입장신문을 급습했다. 홍콩 당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기사를 보도한 혐의로 7명을 체포하고 회사 자산을 동결했다. 다른 여러 명의 직원도 연행해 조사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
2014년 우산혁명의 여세를 몰아 탄생한 이 온라인 매체는 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몇시간만에 바로 폐간을 선언했다. 지난 19일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실시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친중 진영이 싹쓸이 한 지 열흘만이다.
존 리(李家超) 정무부총리는 입장신문과 관련 체포된 이들의 상당수가 이미 회사를 떠난 전 직원이라는 지적에 "누구라도 형법을 위반하면 평생을 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 종사자들은 '썩은 사과'(암적인 존재)와 '사악한 부류'들을 멀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누더기가 된 자유'…공영방송도 손보기
홍콩기자협회는 지난 7월 '누더기가 된 자유'라는 제목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홍콩의 언론 자유가 여러 방면에서 침식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1년은 홍콩의 언론 자유에서 역대 최악의 해였다"고 밝혔다.
당시 크리스 융 전 기자협회장은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언론계에서 자기검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언론인들은 취재에 응할 사람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정부가 올초부터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등 공영방송 RTHK 손보기에 들어가면서 여러 직원이 자의 혹의 타의로 회사를 떠났다. 지난 8월 홍콩 인터넷 매체 단전매(端傳媒)는 "홍콩의 언론 자유가 쇠퇴하고 있다"며 싱가포르 이전을 발표했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 7월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을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약탈자'(predators) 명단에 올리면서 "람 장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꼭두각시임이 증명됐으며, 그는 이제 공공연히 언론에 대한 시 주석의 약탈적인 방식을 지지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다음 타깃이 홍콩기자협회라고 예측한다. 당국이 홍콩기자협회가 학생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주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회원명단과 자금 출처를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론슨 챈 홍콩기자협회장은 연합뉴스에 "레드 라인(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설정됐다. 그러나 당국은 레드 라인이 어디까지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언론인들은 경찰이 자택 문 앞에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레드 라인을 넘었는지를 결코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국영기업이 홍콩 최고 권위의 영자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국영기업이 SCMP를 인수한다면 홍콩에서 긴장이 더욱 고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SCMP와 이 신문을 소유한 알리바바는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 "언론 자유 후퇴에 떠나는 것 고려"…외신기자 비자갱신 거부도
홍콩은 수십년간 국제금융허브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언론 스펙트럼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홍콩외신기자클럽(HKFCC)이 홍콩국가보안법과 관련해 회원 9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6%는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언론 자유의 후퇴를 이유로 홍콩을 떠날 계획을 이미 세웠거나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56%는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후 어느 정도는 민감한 주제에 대한 보도를 피하거나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84%는 취재환경이 악화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86%는 민감한 주제와 관련해 취재원들이 언급을 회피하거나 인용을 거부하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홍콩 당국이 호주 국적인 자사 홍콩 특파원의 비자 갱신을 아무런 이유없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이 국제적 도시로서의 입지에 매우 중요한 외국 언론의 접근권을 계속 보장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그에 앞서 지난해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홍콩 내 취재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면서 홍콩 사무소 일부를 서울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홍콩외신기자클럽은 입장신문 사태와 관련한 성명에서 "홍콩 언론계에 힘겨웠던 한 해에 이어 이는 홍콩의 언론 자유를 또다시 강타한 것으로, 홍콩의 언론 환경을 계속 냉각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홍콩은 정보, 표현, 연합의 자유를 존중하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며 "우리는 홍콩 시민사회가 자신들을 위해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민의 공간과 통로가 급속히 닫히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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