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미국 정부와 원자력 벤처기업이 추진하는 차세대 고속원자로(고속로) 개발 사업에 일본이 참여한다.
요미우리신문의 1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와 미쓰비시중공업은 이르면 이달 중 차세대 고속로 개발에 관한 협력 합의서를 미국 측과 교환할 예정이다.
미국의 차세대 고속로 개발 사업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벤처 기업인 테라파워와 미국 에너지부가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출력이 34만5천 킬로와트(kW)급 고속로인 소형모듈원전(SMR)을 미 서부 와이오밍주에 지어 2028년 운전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건설비 약 40억 달러(약 4조7천600억원)는 테라파워와 미 에너지부가 절반씩 댈 예정이다.
고속의 중성자 성질을 이용해 일반적인 경수로 원전보다 플루토늄 등을 더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는 고속로는 강한 방사선을 장기간 방출하는 폐기물 양을 줄일 수 있지만 건설 비용과 안전성 등에서 해결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속로의 냉각재로는 물이나 공기에 닿으면 격렬하게 반응해 다루기 어렵지만, 원자로의 열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액체 나트륨을 사용한다.
통상적인 경수로 원전에서 쓰는 것보다 우라늄 농도를 올려 수명을 길게 만든 연료를 사용해 경제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70년대 이후 고속로 개발 사업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관련 기술 축적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고속로 모델인 몬주 실험로와 원형로 운영을 통해 기술을 축적한 일본과 2019년쯤부터 협력 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일본은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을 추출한 뒤 우라늄과 혼합해 다시 연료로 만드는 핵연료 재활용 사업의 핵심으로 고속로 실용화를 1960년대부터 추진했다.
그러나 후쿠이(福井)현에 세워진 28만kW급 몬주 원형로의 배관에서 1995년 나트륨이 누출돼 가동이 중단되는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잇따른 영향으로 2016년 12월 폐로가 결정되면서 사실상 고속로의 실용화에 실패했다.
일본 원전 정책을 관장하는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미국이 실패를 포함한 일본의 경험을 원하고 있다"며 몬주 사업으로 얻은 교훈 등을 미국과 공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도 요미우리신문에 "일본의 고속로 지식과 우수한 실험시설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미일 간 협력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지금까지의 고속로 설계 기술과 운용 관련 데이터를 미국 측에 제공하고, 이바라키(茨城)현에 만들어 놓은 대형 실험로 시설에서 새로운 설계에 필요한 안전 시험을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를 소관하는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은 이를 위한 시설 정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고속로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재이용하는 핵연료 사이클(주기) 정책의 필수 시설이라며 일본 정부가 미국의 차세대 고속로 개발 사업에 참여해 향후의 국내 건설에 필요한 기술 획득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대응이 세계적으로 중요 정책 과제로 부상하면서 고속로 개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원자력협회 전망으로는 2050년 세계 원전 시장 규모가 2020년의 약 4배인 400조원 규모로 커지고, 이 가운데 100조원대를 차세대 원자로가 차지한다.
고속로 분야에서 미국에 앞서는 중국과 러시아는 2030년대 상업 운전을 계획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차세대 고속로 개발 분야에서 미일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장래 원전 시장에서 앞서가려는 미국과 고속로 개발의 발판을 잃은 채 새로운 활로를 찾던 일본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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